고령 신씨 항렬표 돌림자
역사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신라 공족(公族)의 후예로 고려에서 지방 향리인 호장이 되었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에 올라 그 후손들은 누대로 정착 세거해 온 고령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다.신성용의 5세손 신덕린(申德隣)이 고려 말에 좌사의대부와 예조와 공조판서 판서에 이르렀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공조참의를 역임한 아들 신포시(申包翅)를 데리고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키다가 다시 전라도 광주(光州)의 서석산으로 옮겨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신포시(申包翅)의 아들 신장(申檣), 신평(申枰), 신제(申梯)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맏아들 신장(申檣)은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올라 남산지곡을 지었으며, 오랫동안 대제학에 있었고, 둘째 아들 신평(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