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박씨(江陵朴氏)의 시조 박제상(朴堤上)은 신라 제5대 파사이사금의 5세손으로 대아찬(大阿湌)을 지냈다.
강릉 박씨(江陵朴氏)의 기세조 박순(朴純)은 신라 파사이사금의 35세손으로 1174년(고려 명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좌승선(左承宣) · 한림학사(翰林學士) · 중추원사(中樞院事) ·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낸 뒤 병부상서(兵部尙書)와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이르렀다. 또 상장군(上將軍)을 겸하면서 상장군(上將軍) 석린(石隣)의 모반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보정정국공신(保定靖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과 검교태부(檢校太傅)에 특제되었다. 신종 때는 좌복야(左僕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후에 강릉(江陵)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1]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동(東) |
용(容) |
균(均) |
종(鍾) |
철(澈) |
상(相) |
열(烈) |
교(敎) |
선(善) |
제(濟)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극(極) |
병(炳) |
중(重) |
수(銖) |
호(浩) |
근(槿) |
희(熙) |
재(栽) |
석(錫) |
영(泳) |
4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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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