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박씨(春川 朴氏)의 시조 박항(朴恒)은 자가 혁지(革之)이고 처음 이름은 박동보(朴東甫)였으며 춘주(春州)의 주리(州吏)였다.[1] 신라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의 11세손이라고 한다.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을 거쳐 충주목사(忠州牧使)로 나갔으며, 충렬왕 때 승선(承宣)을 거쳐 동지밀직사(同知密直使)에 올라 왕을 호종하고 원(元)에 다녀와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박원굉(朴元宏)은 평장사, 박원비(朴元庇)는 판서를 지냈고, 박원굉의 아들 박안구(朴安具)는 대제학, 증손 박의공(朴義公)은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박원비의 아들 박광선(朴光先)·박려(朴旅) 부자는 직강(直講)을 지냈다.
박항(朴恒)의 아들 평장사(平章事) 박원굉(朴元宏)과 판사(判事) 박원비(朴元庇)의 후손에서 장본파(張本派)ㆍ월교파(月橋派)ㆍ고탄파(古呑派)ㆍ평천파(平川派), 경주파(慶州派)ㆍ노일파(魯日派)ㆍ예천파(醴泉派)ㆍ의성파(義城派)ㆍ상주파(尙州派)ㆍ평해파(平海派)ㆍ영해파(寧海派)ㆍ건금파(乾金派)ㆍ약사파(藥司派)ㆍ봉산파(鳳山派)의 14파로 크게 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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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민(敏) 경(敬) |
제(濟) 영(泳) |
화(和) 영(榮) |
노(魯) 용(容) |
훈(壎) 원(遠) |
수(銖) 호(鎬) |
남(南) 승(承) |
선(宣) 주(柱) |
연(然) 현(顯) |
중(重) 규(珪)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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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兌) 상(商) |
한(瀚) 구(求) |
병(秉) 정(禎) |
수(壽) 남(南) |
재(載) 의(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