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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릉두씨(杜陵杜氏)는 시조를 달리 하는 두 계(系)로 나누어 진다.

 

두경녕(杜慶寧)계 만경 두씨

시조(始祖) 두경녕(杜慶寧)은 송(宋) 태종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송(宋) 진종의 왕위 계승 문제에 관해 상소를 올려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右拾遺) 두지봉(杜之逢) 형제를 데리고 정처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목종은 두경녕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하였다.[1] 궁지도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이다. 그래서 만경 두씨(萬頃 杜氏)라고도 한다.

 

 

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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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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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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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

33세

34세

홍(洪)

수(秀)

병(炳)

균(均)

진(鎭)

수(洙)

동(東)

희(熙)

재(在)

육(陸)

35세

36세

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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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현(鉉)

순(淳)

표(杓)

환(煥)

혁(赫)

석(錫)

호(浩)

상(相)

엽(燁)

규(圭)

 

두교림(杜喬林)계 두릉 두씨

시조 두교림(杜喬林)는 명나라에서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자는 정덕(正德)이다. 두교림의 아들 두사충(杜師忠)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조선에 정착하여 살게 됨으로써 후손들이 두교림을 시조로하고 고향인 두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9세

10세

11세

12세

13세

14세

15세

○한(漢)

현(賢)○

○병(炳)

규(奎)○

○진(鎭)

택(澤)○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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