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씨는 동중서의 43세손 동승선(董承宣)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명나라 접위사(接慰使)로 고려에 들어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영천군(榮川君)에 봉해지면서 영천(榮川:영주)에 정착하였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함경도 북청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천(영주)를 관향으로 쓰게 되었으나, 함경북도 명천군에 살던 후손들이 원주(原州)로 칭관하는 등 관향을 달리하다가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으로 조선에 온 동일원(董一元)의 소장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 출생지인 중국 광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계파는 동승선의 아우인 동인선(董印宣)으로 아버지 친구인 서달(徐達)의 천거로 조선 태조 때 지휘사가 되어 전공을 세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 그의 8세손으로 명나라 장군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 온 동일원(董一元)의 차남 동대순(董大順)이 계보를 잇고 있다.
이 두 계파는 1924년 갑자보(甲子譜)를 계기로 결합, 본관을 광천으로 하게 되었고, 광천동씨는 동중서를 시조로 하고 동승선과 동인선을 각각 1세조로 하고 있다.
동승선의 손자 동덕란(德蘭)은 공조시랑을, 현손 동보하(寶夏)와 동상하(尙夏)는 공조전서를 역임하였으며, 인선의 현손 동학정(學政)은 태자태보에 오랐다
동일원(董一元)의 손자 동한필(漢弼)은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분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며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동희방(董希芳)의 아들 동응란(董應蘭)은 1624년(인조 2) 부원수(副元帥)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향병(鄕兵)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우봉 현감(牛峰縣監)을 거쳐 갑산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그밖의 인물로는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낸 동혜진(董惠震)과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한 동정란(董廷蘭)이 유명했으며, 동하욱(董夏旭)은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라 부호군(副護軍) 동희경(董禧景), 부사(府使) 동기연(董基衍), 현감(縣監) 동진호(董鎭鎬)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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