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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조 인서(印瑞)는 중국 진(晉)나라 풍익대부로서 300년(신라 기림왕 3년) 사신으로 신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의 벼슬을 지냈다.

33세손 인빈(印份)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인빈의 아들 인완(印完)은 형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으며, 손자 인규(印珪)는 판이부상서를 역임했다. 증손 인현원(印玄元)은 응양위 대장군을 거쳐 호부상서를, 현손 인정(印貞)은 평장사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39세손 인공수(印公秀)가 1275년(충렬왕 1)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전함·병량(兵糧)을 마련하는 데 대한 애로를 진정하고, 일본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며, 필도치(必闍赤)가 되어 기무(機務)에 참여하였다.

41세손 인당(印璫)이 1345년(충목왕 1) 밀직사가 되었고, 1351년(충정왕 3)에는 만호로서 전 밀직 이권(李權)과 함께 자연도(紫燕島)와 삼목도(三木島)에 침입한 왜구를 서강(西江)에서 막았다. 1354년에는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이해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에 봉해져 원나라의 요구로 장사성(張士誠) 토벌군에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1356년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고, 이어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강중경(姜仲卿)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 8참(站)을 공략하였는데, 이 때 강중경이 술에 취하여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를 베었으며, 이어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3참을 공파하였다. 이 해 7월 관제회복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1] 인당의 묘소는 개성시에 있다.

인당의 아들 인안(印安)이 전리 판서를, 인해(印海)가 이부시랑을 지냈다. 손자 인원보(印原寶)가 서북면 체찰사, 인중보(印重寶)가 상장군을 각각 역임했다. 대장군을 지낸 인저(印著)와 절충장군 인철관(印鐵寬), 선략장군으로 임진왜란 때 정난원종 이등공신에 오른 인발(印潑), 도총부 부총관 인이헌(印以憲), 참판을 역임한 인명조(印明朝), 인근영(印瑾永), 인석신(印錫信), 인상혁(印相赫) 등이 가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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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공파
  • 판관공파
  • 송헌공파
  • 참의공파인낙진
  • 직무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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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랑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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