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인씨 항렬표 돌림자
역사 시조 인서(印瑞)는 중국 진(晉)나라 풍익대부로서 300년(신라 기림왕 3년) 사신으로 신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의 벼슬을 지냈다. 33세손 인빈(印份)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인빈의 아들 인완(印完)은 형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으며, 손자 인규(印珪)는 판이부상서를 역임했다. 증손 인현원(印玄元)은 응양위 대장군을 거쳐 호부상서를, 현손 인정(印貞)은 평장사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39세손 인공수(印公秀)가 1275년(충렬왕 1)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전함·병량(兵糧)을 마련하는 데 대한 애로를 진정하고, 일본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며, 필도치(必闍赤)가 되어 기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