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최씨의 종문. | |
관향 | 경상북도 경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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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최치원(崔致遠) |
주요 중시조 | 최청(崔淸), 최단(崔鄲), 최호(崔灝), 최예(崔汭), 최현우(崔玄祐), 최광위(崔光位) |
주요 집성촌 | 경상북도 경주시, 포항시 경상남도 함양군, 합천군 전라북도 무주군, 익산시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전라남도 담양군, 신안군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평안남도 성천군, 평원군, 영변군 함경남도 함주군, 서천군 함경북도 경원군, 무산군 |
주요 인물 | 최승우, 최언위, 최승로, 연창궁부인, 최항, 최호, 최숙생, 최진립, 최제우, 최시형, 최익현, 최현배, 최규남, 최병국, 최광식, 최경환, 최교일, 최재천, 최재성 |
인구(2015년) | 945,005명 (6위) |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 말기 6두품 출신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다. 최치원은 869년(신라 경문왕 9)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간지 5년후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시어사에 이르고 자금어의를 하사받았으며, 제도행영 병마도총 고변의종사관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병부시랑 지서서감이 되었으나 외직을 원하여 대산, 천령, 부성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고 아손이 되었다. 그 후 난세를 비관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며 수도하다 생을 마쳤다. 그는 한시문집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20권) 등의 명저를 남겼다.
경주 최씨는 조선시대에 퇴조하여 문과 급제자 42명을 배출하였지만 상신, 대제학은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였다.[1]
경주 최씨는 최치원의 후대에서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 광정공파(匡靖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사성공파(司成公派), 화숙공파(和淑公派), 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대파를 주축으로 판서공파(判書公派), 계림군파(鷄林君派), 충렬공파(忠烈公派), 문밀공파(文密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화숙공파(和淑公派) 등 26파로 분파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