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가출했던 윤모 양이 15살 또래 여학생 4명, 20대 남성 3명들에게 갖은 구타와 학대, 성매매 강요를 당한 끝에 숨지자, 증거인멸을 위해 시체에 불을 지르고 반죽한 시멘트를 뿌려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사건. 이들은 이 피해자 윤 양 이외에도 대전에서 꽃뱀임을 눈치챈 40대 남성을 집단 구타해 숨지게 한 혐의까지 합해 총 22가지의 범죄로 기소되었다.
사건 자체는 5월에 지역 신문을 통해 이미 기사화가 되었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방영된 8월에서의 일이다.
궁금한 이야기 Y 2014년 8월 15일 방영분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는데, 방송에서 다루어진 바에 따르면 가해 여중생들은 자신들도 가해자 남성들의 협박과 강요에 의해서 할 수 없이 한 행동이었다는 편지를 변호사에게 보냈고 가해 여중생들의 부모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가해자 남성들 중 한 명의 지인에 따르면 이 남성들의 평소 행실도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었다고 하며 변호사에게 보낸 가해 여중생들의 편지를 본 범죄심리 전문가는 편지의 내용 자체는 신빙성이 있어 보이나, 이들이 윤 양에게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서는 절반 정도는 가해 여중생들이 자발적으로 가담한 부분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 연행 중인 모습.
김해로 전학 온 피해자 윤모 양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여성 가해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2014년 3월 15일 오후 2시, 윤모 양은 피고인 허모 씨의 친구인 김모 씨와 함께 가출했다. 윤 양은 피고인들과 함께 부산의 한 여관에 머물렀는데 이들은 윤 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14일 후인 3월 29일 오후 9시, 윤 양 아버지에 의해 가출신고가 이루어지자, 가해자 무리는 윤 양에게 "성매매 행위를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는 집으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가해자 무리 중에서 일부 여학생과 남자들은 지인으로부터 "귀가한 윤모 양이 자기 아버지에게 성매매 사실을 다 말하고 있다"고 전해듣게 되면서 이를 우려한 허 씨와 김 씨가 30일 오후 1시 윤 양이 다니던 부산 연제구 거제동 소재의 교회로 찾아가 윤 양을 강제로 끌고 무리에 합류시켰다.
이들은 울산 일원의 모텔을 옮겨 다니면서 피해자를 감시하면서, 조건만남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함께 생활했다.
4월 4일 오후 10시 30분, 가해자 무리는 울산의 모 모텔에서, 윤 양이 페이스북에 접속한 것을 알게 되자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했다'며 집단으로 주먹을 날리고 넘어진 윤 양을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다가, 그 무렵 조를 짜서 피해자를 밖으로 못 나가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4월 6일 오후 11시, 이들은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대구광역시 일원의 모텔로 장소를 옮겼다. 남자들은 윤 양에게 "성매매 사실을 집에 이야기 했는지 솔직히 말해라"며 주먹과 발로 전신을 수십 차례 가격하고, 다른 여학생들에게도 "공범이 되어야 하니 너희도 가담하라"고 강요하면서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의 악행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으며, 그 후 남자들은 윤 양에게 여자 공범들 중 한 명과 싸워 이기면 집으로 보내준다고 말하면서 이들과 번갈아가며 일대일로 싸우게 하며 폭행을 가했다.
또, 무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남자 가해자 이 씨(25)는 윤 양에게 목을 뒤로 젖히게 한 뒤 손날로 울대를 수차례 강하게 가격하기도 했으며, 선풍기와 통을 들고 바닥에 앉아 있는 윤 양의 몸통을 수회 내리치기도 했다.
한편 남자 가해자 허 씨(24)는 냉면그릇에 소주 2병을 가득 부어 마시게 한 후 토해내면 그 토사물을 핥게 하며, 피해자가 폭행으로 인해 답답하니 물을 부어달라고 하자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 다음 그 뜨거운 걸 몸과 다리에 부어버리고 여자 가해자들에게도 끓는 물을 뿌릴 것을 동참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허 씨는 또 찢어진 옷으로 피해자의 손을 뒤로 묶고 다른 공범들과 수십 차례 폭력을 행사하였다.
윤 양은 화상으로 전신에 물집이 생겼다가 터져 껍질이 벗겨지고,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 행위 등으로 인해 이온음료를 제외한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하는 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즉시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탈수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범행 발각을 우려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후에도 남자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앉았다 일어서기 백 번을 하다 중간에 멈추거나, 집에 가고 싶다고 하거나, 피해자에게 집에 가게 되면 신고할 것이냐고 묻고, 구구단을 외우게 해서 못 말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이런 행위들을 피해자에게 시키면서 수십 차례 폭행했다.
4월 9일 오후 10시, 남자 3명과 여자 가해자 중 1명인 양모 양은 피해자 윤 양을 승용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대구 달서구 모 공단지대 옆 노상에 정차한 상태에서 오목 게임을 했다. 물론 진 사람이 뒷좌석 바닥에 엎드려 있는 윤 양을 때린다는 악랄한 내기도 있었다.
당시 윤 양은 소변을 보기 위해서 차에서 내렸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혼자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해자 일행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차량 운행 중, 일행 중 누군가가 윤 양에게 "죽으면 누구를 데려 갈 것이냐?"고 물어보자, 윤 양은 남자 일행 중 나이가 많은 이 씨(25)를 지목했다. 이에 화가 난 이 씨는 윤 양을 주먹과 구두 굽으로 때리고, 다시 윤 양이 이번엔 양모 양을 지목하자 양 모양은 차에 있던 보도블록으로 내리치는 등 폭행했다.
그 후 이들은 대구의 한 모텔 인근 주차장으로 윤 양을 데려갔는데, 주차장에서도 폭행은 여러 번 가해졌다. 결국 윤 양은 4월 10일 0시 30분경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 웅크린 상태로 탈수와 쇼크 등으로 인한 급성 심장 정지로 사망했다.
4월 11일 새벽 2시, 남자들과 2명의 여학생 공범은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유기하려 경남 창녕군 대지면 신촌리 장소불상의 과수원에 가서 미리 준비한 삽과 곡괭이로 구덩이를 파서 사체를 밀어넣고, 얼굴을 못알아보게 하려고 휘발유를 윤 양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여 그을린 후 흙으로 덮었다.
12일 밤, 아무래도 불안했던 것인지 이들은 유기 장소를 옮기려고 다시 찾아와 시체를 파내 트렁크에 실었다. 14일 새벽 2시, 창녕군 대지면 환곡교 앞 도로로 이동한 이들은 사체를 들고 야산으로 향했다.
여자 공범 2명이 각각 휴대폰 조명등을 비춰 주거나 주변에서 망을 볼 때, 남자들은 삽과 곡괭이로 전날에 미리 파 둔 구덩이에 비닐을 깔고, 윤 양의 시신을 눕힌 다음 시멘트를 반죽해 뿌리고, 돌멩이와 흙을 덮어 매장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재조명되었는데 범행의 악랄함이나 시체를 훼손하고 콘크리트로 범행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까지 가해자들의 성별과 나이 성폭력 여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면식이 있었다는 점을 빼고는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가 되었다.
거기다가 이들이 기소된 내용은 가히 범죄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이다. 기소 항목은 다음과 같다.
▲강도살인
▲특수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절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
▲사기미수
▲공문서부정행사
▲살인
▲사체유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감금)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등상해)
▲폭행
▲상해
▲미성년자유인
▲성매매유인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알선영업행위등)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성매수등)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재물손괴등)
2014년 4월 19일 오전 7시, 남성 3명은 사건 당일 오전 6시쯤 유성구 모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함께 있던 여성이 채팅을 통해 피해자 A(45)씨를 만났는데, A씨가 성매매를 하지 않고 차량에 태운 후 40여분간 데려다니며 괴롭혔다는 말을 듣고 숙소(모텔)에 있는 양양을 불렀다.
‘A씨에게 전화해서 조건만남 약속을 잡으라’는 말을 들은 양양은 6시40분경 A씨를 만나 모텔에 들어갔다. 모텔에 들어간 양양은 이씨 등에게 휴대전화로 위치를 알려줬고, 이씨 등은 모텔을 찾아가 실랑이 끝에 A씨를 모텔 앞 노상으로 끌어냈다.
CCTV에 고스란히 찍힌 폭행 장면에서, 이씨 등 남성 3명은 A씨를 무자비하게 집단 폭행하기 시작했고, 특히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 폭행하다가 허씨는 20㎏에 달하는 대형 플라스틱 화분을 고개를 숙인 A씨의 머리에 내리쳐 거의 실신했음에도 발로 머리를 내리찍기까지 했다. A씨의 움직임이 거의 없자, 이들은 A씨를 차량 뒷좌석에 태운 후 현장을 떠났다.
사건 발생 3시간쯤 후 A씨가 의식을 잃어가며 ‘살려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뒷좌석 발밑에 눕혀놓고 또다시 폭행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담배와 라이터로 옆구리를 지지며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결국, A씨가 사망하자, 차량 안에 A씨를 버리고 훔친 금팔찌와 시계, 휴대전화 등을 팔아 ‘대포차량’을 사기까지 했지만 당일만에 붙잡혔다.
이후 대전 성매수남 강도살인 사건으로 따로 잡힌 4명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거짓 진술을 하기 위해 말을 맞췄던 전력도 드러났다. "금품을 팔았던 건 양모 양이, 피해자를 폭행한 부분은 이모 씨가 주도적으로 했다고 진술하기로 정리했다."고 증언한 것. 이것들이 과연 사람인지부터가 의심되는 대목.
가해자 중 10대 여고생들은 창원지방법원에서 김해 여고생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20대 남성 3명과 10대 여고생 1명은 40대 남성 강도살인 혐의로 대전지방법원에서 각각 재판이 진행되었다.
2014년 10월 31일, 창원지방법원에서 검찰은 여성 피고인 3명에게 징역 3~7년을 구형했다.
2014년 11월 11일, 창원지방법원 제4형사부(판사 차영민·조형우·황여진)는 양모 양에게 징역 6~9년, 허모 양과 정모 양에게는 징역 6~8년, 미성년자 유인등의 혐의를 받은 김모 씨(24)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보다 조금 센 판결이 나왔지만 사건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이다. 이는 미성년자의 법정 형벌의 최상한이 15년이고, 무기징역이나 사형은 안 되기 때문이다.
2015년 2월 13일, 대전지법 제12형사부(황의동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13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26) 씨와 허모(25)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또 다른 이모(25) 씨에게는 징역 35년이, 양모(17) 양에게는 장기 10년에 단기 7년의 징역형이 각각 선고됐다.
그리고 김해 여고생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20대 남성 3명은 이에 불복 항소를 했다.
2015년 4월 2일,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형사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허모 양과 정모 양에게 징역 장기 7년 단기 4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과 함께 구속기소된 양모 양은 1심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여자 피고인들이 남자 공범들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받는 등 '가해자 겸 피해자'라는 이중적인 지위에서 남자 공범들에게 성매매를 강요받아야 했고, 남자 공범 무리에 합류할 때까지 이들을 구제할 사회적, 교육적 안전장치도 없어 이 사건의 참혹한 결과를 이들에게만 탓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이 만 15세 내지 16세에 불과한 소년인 점, 조손가정이나 편모가정 등 비교적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따돌림으로 비행의 길에 접어들어 미성년자 성매매를 업으로 하는 남자 공범 무리에 합류해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는 점도 감안했다. 미성년자 유인 등의 혐의를 받은 김모 씨(24)는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를 성매매 목적으로 유인한 미성년자 유인죄는 이미 성매매유인죄에 흡수돼 미성년자유인죄는 성립하지 않으며, 김씨는 피해자에 대한 폭행이나 가혹행위, 살인 등의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 23일 주범에 대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었다.
2016년 3월 28일 대법원은 별도로 주범은 재물손괴죄 등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즉, 주범은 무기징역 마치고 징역 1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이는 무기징역을 치르다가 가석방으로 나와도 1년형을 도로 치뤄야 한다.
이렇게 이중으로 된게 폭력행위 법률이 일반 형법인 경우와 특가법의 처벌기준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해서 헌법재판소가 특가법 일부 조항을 위헌 판결을 하면서 특가법으로 기소된 항목은 파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고 살인죄만 먼저 판결한 게 2015년이었다. 이후 고법에서 다시 재판, 1년을 선고하고 2016년에 대법원에서 확정한 것이다.
허 씨는 무기징역, 이모 씨는 징역 35년, 양모(18세)는 단기 6년에 장기 9년을 확정했다. 그리고 성을 매수한 정모 씨는 벌금 1,200만 원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