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박윤웅(朴允雄)은 고려 태조(太祖) 때 큰 공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고향인 하곡현(河曲縣)이 동진현(東津縣)・우풍현(虞風縣)과 병합되고 흥례부(興禮府)로 승격되었다고 한다.[1]
·판서공파
57세 |
58세 |
59세 |
50세 |
61세 |
62세 |
63세 |
하(夏) |
규(圭) |
석(錫) |
수(洙) |
찬(鑽) |
영(泳) |
정(程) |
·태사공파
57세 |
58세 |
59세 |
50세 |
61세 |
62세 |
63세 |
64세 |
하(夏) |
정(定) |
병(柄) |
주(周) |
석(錫) |
순(洵) |
계(桂) |
응(應) |
·돈옹공파
58세 |
59세 |
50세 |
61세 |
62세 |
63세 |
64세 |
식(植) |
노(魯) |
중(重) |
호(鎬) |
홍(洪) |
영(榮) |
창(昌) |
·봉화공파
57세 |
58세 |
59세 |
50세 |
61세 |
62세 |
63세 |
64세 |
승(承) |
병(柄) |
노(魯) |
균(均) |
현(鉉) |
태(泰) |
근(槿) |
욱(煜) |
·칠의공파
57세 |
58세 |
59세 |
50세 |
61세 |
62세 |
63세 |
64세 |
진(鎭) |
승(承) |
상(相) |
응(應) |
현(鉉) |
하(河) |
동(東) |
훈(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