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 의하면 시조 김균(金勻) 또는 김균(金鈞)은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으로 검교(檢校)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역임하고, 함창(咸昌)으로 분적(分籍)하였다고 하였다.
그의 8세손 김이음(金爾音)은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강원 감사(江原 監司)였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이음의 6세손 김융(金隆)은 벼슬이 집경전 참봉(集慶殿 參奉)이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종저(金宗紵)는 호장(戶長)으로서 일파를 이루었다. 김문명(金聞命)은 벼슬이 감무(監務)였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김해(金海)의 구지봉(龜旨峰)에서 김수로왕(金首露王)과 함께 금합(金盒)에서 태어난 고령가야왕(古寧伽倻王) 김고로(金古露)의 후손이다. 왕손은 253년(신라 첨해왕 8) 실국 후 대다수는 가야연맹(伽倻聯盟)의 각국으로 이산하고 혹은 백제(百濟)로 망명하였으며 일부는 고국(故國)과 주변에 은둔하면서 투쟁을 계속하다가 신라(新羅)가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과 사벌국(沙伐國) 유민(流民) 중 항거(抗拒)하는 왕족과 호족 80여 가(家)를 영덕(盈德)의 사도성(沙道城)으로 이주시켰는데 그 때 추방된 일파(一派)에서 고려 인종 때 출생하여 현달(顯達)한 덕원군(德原君) '김종제'(金宗悌)와 덕양군(德陽君) '김종계'(金宗繼) 형제(兄弟)를 중조(中祖)로 하여 새로이 문호를 열었으며, 그 후 의산군(宜山君) 김세순(金世詢)의 종파와 어사공(御使公) 김균(金鈞)을 지파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조 김선(金瑄)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 태자태사(太子太師) '김인관'(金仁琯)의 14세손으로 1468년(세조 1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감사(江原監司)로서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었고 함안군(咸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여(汝) |
상(相) |
영(榮) |
원(遠) |
석(錫) |
수(洙) |
동(東) |
용(容) |
재(在) |
34세 |
35세 | |||||||
흠(欽) |
승(承) 원(源) |
2020/01/20 - [멀티미디어/연예인 모델 사진 화보] - 함창 김씨 연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