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문적(金文迪)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고종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 되고 풍산백(豊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7세 김안정(金安鼎)은 고려말 삼사좌윤(三司左尹)을 역임하였는데 후손들이 '중시조'(中始祖)로 삼고 있다. 아들 김자순(金子純)은 조선조 계공량 군기시 직장, 통훈대부 통례원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김자순의 증손 김양진(金楊震)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제학(副提學)이었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김양진의 현손 김영조(金榮祖)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 참판(吏曹參判)이었으며, 향사에 배향되었다. 김영조의 아우 김응조(金應祖)도 벼슬이 우윤(右尹)이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양진의 증손 김수현(金壽腎)은 벼슬이 참찬(參贊)ㆍ제학(提學)이었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풍산 김씨(豊山 金氏)는 김문적의 아들 호장(戶長) 김영립(金永立)의 후예라 한다. 또 1887년 숭혜전(崇惠殿) 건립 때 경주 김씨 후손 대제학 김창희(金昌熙)가 각 문중 유사들이 제출한 수단(收單)을 바탕으로 편찬한 《김씨 분관록》에는 시조가 부제학(副提學) 김양진(金楊震) 이라 한다.
청송 김씨(靑松 金氏)와 풍기 김씨(豊基 金氏)와 풍천 김씨(豊川 金氏)와 화평 김씨(和平 金氏)등이 있다.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상(相) |
종(宗) |
중(重) |
규(奎) |
락(洛) |
병(秉) |
섭(燮) |
재(在) |
현(鉉) |
연(淵) |
31세 |
32세 |
||||||||
동(東) |
환(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