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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고창(古昌)의 호족이었으며, 태조(太祖)가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고창군(古昌郡)에서 김선평(金宣平, 안동 김씨 시조)·권행(權幸, 안동 권씨 시조)과 함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시조는 충헌(忠獻)이다.

한편, 『안동장씨대동속보(安東張氏大同續譜)』에 의하면 시조 장정필에 대해 “그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며, 888년(신라 진성여왕 2)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부(蘇興府)에서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 장원(張源)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강원도 강릉에 머물다가 경상북도 노전(蘆田:안동의 옛 이름)에 정착하였다. 18세 때 다시 당나라에 들어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다가 김남석(金南錫)이 무고를 하여 다시 환국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병산(甁山)에서 태조를 도와 견훤의 군대를 대파한 공으로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三重大匡保社壁上功臣太師)에 오르고 고창군(古昌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한편, 안동장씨 대종회에 따르면 장정필의 고조부는 당나라에서 중랑장우복야(中郞將右僕射)를 지낸 장백익(張伯翼)으로 추정되며, 청해진대사로 유명한 장보고(張保皐)는 장백익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보고는 전라남도 완도 출신이며, 《삼국사기》에 원래 성이 없이 본명이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만 적혀 있고, 당에 건너간 뒤 중국식의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 ‘궁(弓)’을 중국에 많은 성씨인 ‘장(張)’씨로 치환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파

현재 안동장씨의 파에는 화산군파(花山君派), 부령군파(扶寧君派), 예산군파(禮山君派), 청송군파(靑松君派), 지례백파(知禮伯派), 진천군파(鎭川君派), 이천백파(利川伯系), 울진부원군파(蔚珍府院君派) 등이 있고, 그외에도 60개의 소파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재(載)
규(奎)

선(善)

태(泰)

주(柱)

훈(勳)

현(玹)

용(鎔)

수(洙)

래(來)

엽(燁)

4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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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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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50세

효(孝)

철(鐵)

영(永)

상(相)

환(煥)

기(基)

호(鎬)

한(漢)
락(洛)

모(模)
주(柱)

찬(燦)
형(炯)

51세

52세

53세

54세

           

균(均)
시(時)

용(鎔)
옥(鈺)

준(準)
철(澈)

근(根)
수(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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