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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화), 육영재단 강탈 사태 핵심 관련자이면서, 대략 1년 6개월 후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당시 유력대선주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5촌 조카이자, 서로 사촌이었던 박용철과 박용수가 같은 날 북한산에서 사망한 사건.

박용철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박용수는 박용철 사망 몇 시간 후 북한산에서 목을 매고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당시 매체들은 이듬해 겨울에 있을 대선에 영향이 갈까봐 이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은 석연찮은 의혹을 뒤로 한 채, 사건을 둘 사이의 원한에 의한 살인과 자살로 종결시킨다.

사건 발발 후 5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알고싶다 팀을 통해 공중파에서 최초로 다루어졌을 정도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일어난 범죄 사건들을 통틀어 단언컨대 가장 최고 수준의 불가침 영역에 속해있는 미스테리한 사건이다.

 



1990년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남매는 육영재단 소유권 때문에 크게 싸운다. 이때 육영재단은 이사장 박근혜를 등에 업은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박지만, 박근령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언니랑 최태민 좀 떼어내 달라"고 탄원서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하여튼 이 문제 때문에 다투다가 결국 박근령은 친언니인 박근혜를 밀어내고 차기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육영재단은 부동산만 4조원 가치(2016년 시가 기준)를 지니고 있는 대형 재단으로, 임대 수익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으나, 재단 운영이 폐쇄적이라 온갖 비리 의혹으로 점철되었던 탓에 수익금에 대한 루머가 무성했다. 한데 이런 현상은 박근혜가 물러나고 박근령이 취임한 후에도 딱히 해소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2007년부터 그동안 힘을 합쳐왔던 박근령과 박지만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때문이었는데, 신동욱은 2007년 2월에 14살 연상의 박근령과 약혼하고 1년 8개월 후인 2008년 10월에는 결혼한다. 그런데 약혼한 이때쯤부터 박지만은 신동욱이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독점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박근령-신동욱 커플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깊어지자 박근령-신동욱 부부와 박지만 양측에선 조직폭력배와 불법 용역회사 등을 동원한 폭력행사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급기야 2007년 11월 28일에는 불량배 200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폭력 사태까지 터진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에 박근령이 육영재단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재단을 불법 운영하고, 재단 운영비를 박근령이 횡령, 착복하는 등의 범법 행위가 발각되면서 이에 박지만은 박근령에 대한 공세를 더욱 밀어붙였고, 한센병자를 동원한 박지만 측은 기어코 육영재단을 장악하는데 성공해, 당시 이사장이던 누나 박근령과 누나의 남편인 신동욱, 그녀의 측근들 대부분이 육영재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전개

 

박용철은 육영재단 폭력사건 당시 박지만의 최측근으로서 폭력 사태를 주도한 바 있는 인물이다. 박용철은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손자이자 국제전기기업 대표인 박재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삼남매에게는 5촌 조카가 된다.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에 사망 당시 국적은 캐나다였다. 박용철은 2007년에 귀국하여 당시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現 자유한국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박근혜의 경호원 노릇을 하였는데, 이 때 박지만과도 손을 잡고 육영재단 문제에도 관여하였다.

2007년 7월 박용철은 박근혜캠프에서 중국 재경부 장관을 만난다는 이유로 당시 박근령의 약혼남이자 백석문화대학교 겸임교수였던 신동욱과 중국 칭다오에 함께 갔다.

 

그런데 칭다오에서의 첫날 밤에 신동욱이 자기 신변이 위험하다면서 건물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중국 공안에게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육영재단 폭력사건에 개입하여 박근령 이사장을 쫓아내는 데는 것을 주도했다. 

당시 중국에서 구사일생으로 귀국한 신동욱은 2년 반 뒤인 2010년 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홈페이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나를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 사건에서 박지만은 허수아비였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는 주장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이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홈페이지 주인이던 박근혜는 하나뿐인 제부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한다.

(2016년 12월 16일자 노컷뉴스 기사에서 육영재단의 폭력사건에 관여했던 관계자의 증언을 다루었는데, 이 관계자에 의하면 당시 신동욱이 표를 깎아 먹는다'고 판단한 박지만 EG회장과 참모 진영에서 '신동욱을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이에 신동욱을 미얀마에서 총기로 살해할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 신동욱이 주장한 청부 살인 시도 건은 인정되지만 박지만과의 연관성은 부정되었다. 이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용철은 박지만이 이 사건과 무관하고, 박지만의 측근인 정용희 씨가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10년 9월 1일, 재판 과정에서 박용철이 자신이 한 증언을 번복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육영재단 전 법무실 부장 이 모씨가 “박지만이 박용철에게 신동욱을 제거하라고 지시한 육성 녹음이 있고 통장으로 돈을 부쳐 준 증빙이 있다.”라는 얘기를 박용철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박용철도 이를 긍정하면서 “EG그룹 회장 박지만의 비서인 실장 정용희가 내게 회장 박지만의 뜻이라고 말한 육성을 휴대전화 단말기에 녹음해 놨다.”라고 증언하였다.

박용철의 증언 이후 2011년 8월 신동욱은 처남이 자신의 살해기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여 법정 구속되었는데, 이에 신동욱 측 변호인은 2011년 9월 27일로 예정된 변론에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박용철이 9월 27일에 증언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변론을 20여일 앞둔 2011년 9월 6일, 중요한 증언을 하기로 했던 박용철이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 수유분소 앞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신동욱은 결국 이 소송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박용철이 이처럼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이 자세한 내막을 밝히기 전에 숨졌으므로 자세한 부분은 알 길이 없다. 다만 박용철은 자신의 주도로 육영재단에서 박근령 세력을 축출한 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잠시 임명되었으나 이내 교체되었고, 이후 박지만 세력에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당시 박용철의 지인들과 범죄 전문가들은 박지만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은 박용철이 박지만을 압박하려고 진술을 번복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수사결과



2011년 9월 6일 새벽 1시경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 근처에서 박용철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박용철은 자신의 차 근처에 쓰러져 있었는데, 시체는 얼굴과 배가 칼날에 수십 차례 난자당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칼날로 복부를 찌르고 손목을 비틀면서 후벼 판 흔적을 보아, 범인은 살인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며 경험도 풍부한 자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박용철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뒤에도 범인은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장도리로 박용철의 두개골을 세 차례 강력히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박용철이 발견된 곳은 숲속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사무소 근처의 주차장이며 가로등이 비추어주는 범위 내이다.

한편 박용철의 시체가 발견된지 4시간 후인 새벽 5시경, 박용철의 사촌형인 박용수란 인물이 박용철 살해 현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용암문 근처의 산길에서 목이 매달린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시신의 어깨에는 수건이 덮여 있었다. 박용수도 박무희의 손자로서 동양육운 회장 박재호의 아들이였다. 즉, 두 사람은 친사촌 사이다.

경찰은 누가 봐도 평범해보이지 않는 이런 사건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지 겨우 5일만에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서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박용철이 박용수에게 1억을 빌린 적이 있는데 박용철이 돈을 갚지 않고 있었으며, 사건 당일 박용수가 범행 도구를 미리 사놓은 점, 유서를 작성한 점, 범행 전 박용철씨를 만취시키고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점(부검 결과 박용철은 혈중 알코올농도 0.196%, 박용수씨는 0.01% 미만), 박용철과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박용철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점 등을 근거로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아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경찰이 발표한 수사 내용은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아서 그대로 믿기 힘들며 사건을 어떻게든 서둘러 매듭지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경찰 발표가 나온 후 본격적으로 각종 의문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19일 경찰청장 이철성은 "수사에 대한 외압은 없었으며 의혹만으로 재수사를 할 수는 없다" 라고 못박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1월 9일 오후 2시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신동욱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조서 하나와 이 사건 관련한 조서 하나를 썼는데, 특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사로 원체 바쁘게 돌아가다 종료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 관련해 더 이상 유의미한 진전이 이뤄지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7월에 비공개 수사기록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곧 공개된다.

의혹

  • 유족에 의하면 박용철과 박용수는 사이가 좋았고 서로 원한도 없었다고 한다. 사건 전일 박용철, 박용수와 함께 술을 마셨던 황선웅씨의 증언으로도 당시 술자리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박용수가 박용철의 찜질방 운영비를 빌려준 일로 사촌 형제 사이에 문제가 생겨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용철이 박용수에게 돈을 빌렸다는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박용철의 지인(前 육영재단 임원)도 박용수가 박용철에게 1억이나 빌려줄 여유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 두 사람의 체구나 성격을 봐도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박용철은 105킬로그램의 거구에 유도를 오랫동안 했고 폭력 전과가 6개나 있는 조폭 출신에 거친 성격의 소유자이며, 주량이 세서 평소에 한번 술 마실때 많이 마시는 편으로 주변에 유명한 사람이었다. 반대로 박용수는 167센티미터의 키에 70킬로그램이 조금 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박용수가 자신의 육체를 압도하고 성질까지 괄괄한 사촌동생 박용철을 칼로 난자해 살해했다는 점도 이상하거니와, 박용철의 시체에 난 ㄱ 자와 V 자로 꺾여 있는 상해 흔적은 도무지 평범한 사람이 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가족관계를 제하고 보더라도, 살면서 주먹질도 별로 안 해본 50대 일반인이 술에 취한 50대 조폭을 본인이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압도하며, 칼로 마구 찌르고 둔기로 머리도 쳐 죽였다는 게 결론인 것이라 납득하기가 어렵다.
  • 박용수가 노트 한 장을 찢어 남긴 유서도 매우 이상했다. 자신의 시체를 절대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자살한 사람의 유서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많이 이상하다. 국과수에서 이 유서가 박용수의 필적이 맞는지 조사했는데 확인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기자 주진우가 사설 검증원에 의뢰한 결과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로 같은 필체는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 종이글씨를 박용수의 유서로 단정해서 모든 걸 빨리 묻어 버리려는 느낌이 짙었다.

박용수가 남겼다고 하는 유서(왼쪽)와 생전에 그가 쓴 글씨(오른쪽)

  • 박용수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위에서 캡슐이 녹지 않은 변비약이 나왔다. 몸에 알약이 들어가면 30분이면 녹는데,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은 자살하기 30분 전에 먹었다는 의미이다. 사촌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자살하기 불과 30분 전에 장운동을 활발히 해주는 약을 먹는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 자살을 한 곳도 이상하다. 정말 사촌동생을 죽이고 죄책감과 당혹스러움에 자살을 결심했다면, 사촌동생을 죽인 그 자리나 근처, 혹은 자기집처럼 평소 익숙한 곳으로 가서 자살하는 게 자연스럽다. 한밤중에 전등 하나 없는 산으로 가서 컴컴한 어둠속에서 몇 시간이나 등산한 후 자살한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더군다나 그가 산행을 했다고 알려진 길은 이정표나 불빛을 내는 어떠한 것도 없어서 인근 주민들은 대낮에도 기피했던 길이라고 한다.
  • 박용철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수면제 성분(졸피뎀과 디아제핀)이 다량 검출되었으며, 박용수의 시체에서도 소량의 졸피뎀이 검출되었다. 즉 박용철은 수면제로 항거 불능인 상태에서 칼과 장도리 등으로 가격당해 죽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졸피뎀과 디아제핀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구매가 불가능한데, 두 사람은 의사 처방을 받은 적이 없다. 박용철과 박용수의 혈중 알코올 농도와 검출된 졸피뎀의 양이 비례했던점을 들어 술에 약을 타 몰래 먹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팟캐스트에서 제시되었다. 이 약들은 술과 함께 먹을 경우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해서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었을 가능성은 낮다.
  • 박용수의 시체에는 목과 팔 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데 목을 매달기 전에 누군가와 몸싸움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목을 매달고 죽은 박용수의 시체는 큰 타월이 덮여 있었다는 점도 이상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가린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 박용수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나 박용수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만일 박용수가 범인이라면, 사촌동생을 죽이고 자살까지 결심한 마당에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지문을 깨끗이 지워버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피살 사건 현장에서 60미터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된 다른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박용수의 지문은 없었다.
  • 박용수의 가방 자체도 의심대상이다. 박용수는 평소에 가방을 가지고 다닐 경우 무조건 본인이 아끼는 고가의 특정 외제 백팩 하나만 매고 다녀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 가방인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용철 살해사건 당시 가방은 백팩도 아닌 손가방이고 주변인들이 박용수가 가지고 다닌걸 한번도 본 적도 없는 가방이다.
  • 황선웅이 증언한대로 박용수와 박용철이 죽기 전, 세명이서 술을 마신 곳이라고 하는 강남구 신사동의 '스텝바'('스텝'이라는 이름의 술집)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 버전에서는 '잠원동에서 신사동으로 올라가는 길에 스텝바라는 약 20년 쯤 된 바가 있다'고 반론이 추가된 바 있으나, 이 스텝바는 서초구 잠원동에 있다. 따라서 이 바는 문제의 '스텝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어준의 불랙하우스의 두바이 제보자의 말 중에서 13번입구라는 말이 나왔는데 저 숫자가 지하철역 번호라면 13번이 있는 강남인근 역은 교대역과 청담역이 있는데 교대역은 바로 옆이 병원이나 교대후문등이 있어 청담역이 유력해보인다.
  • 위의 항목에 나오는 신동욱 관련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인 박용철의 휴대전화기가 피살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 박지만의 살인 교사가 녹음됐다는 바로 그 휴대전화기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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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건을 기사화한 기자 주진우에게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휴대전화 메세지로 추가 정황을 알려주었다.
    피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청소를 해놓아서 매우 깨끗했다.
    피살 현장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은 박용수가 머물던 여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박용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왜 대리운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용철과 박용수는 어느 친척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사업 자금도 대주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
  • 2016년 12월 1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경찰의 부실 수사와 함께 새로운 의혹이 드러났다. 
  • 박용수 주변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용수는 죽기 얼마 전 치과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으며 시신 옆에서 발견된 가방이 박용수가 평소에 들고 다니던 가방이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 경찰은 사건 종결 후 1개월여만에 이미 깨끗이 치워진 박용수의 여관방에서 갑자기 흉기를 구입한 곳의 카드 영수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 경찰이 주장하는 흉기의 구입처에 문의한 결과 실제로 박용수가 이 곳에서 흉기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경찰이 범행에 사용되었던 흉기와 같은 제품을 파는지 여부만 확인하고 갔다고 한다.
  • 유서에 연락처로 적혀있던 매형에게 인터뷰한 결과 오랜기간동안 전혀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매형의 연락처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 2007년 육영재단 폭력사건 당시 수사에 개입했던 성동경찰서장은 이만희였고, 박용철 살해사건을 담당했던 강북경찰서장은 김영일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이만희는 경북 영천,청도에서 당선되었으나 김영일은 전북 익산에서 낙마하였다. 현재 이만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증인과 짜고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2011년 9월 6일 발생한 박용철 살인사건의 관할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의 검사장 이득홍 전 서울고검장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담박’의 대표변호사 중 하나이며 우병우 전 수석과 사촌동서지간이다. 

주변 인물의 행방불명과 의문사

박용철의 경호원 노릇을 하던 조폭 두목이자, 살인사건 당일 박용철, 박용수 두 사람과 술을 같이 마셨다가 헤어졌다고 증언했었던 황선웅은 2012년에 출소 직후 컵라면을 먹다가 천식기운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항목 참고.

2017년 1월 1일 박지만의 수행비서 주씨가 숨진채 발견되었다. 죽은 주아무개라는 자는 박지만의 EG에서 18년 동안 근무하였으며, 비서실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에서는 1월 2일 자살, 타살 여부를 밝히기 위해 주아무개의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아무개의 죽음에 대해 주아무개가 이 사건에 관련이 있어서, 혹은 주아무개가 이 사건에 대해 박지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 했기 때문에 살해 된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것이 알고싶다 측에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청장 이철성은 정밀부검을 하면 보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성급히 지금까지 나온 부검 결과론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고 주아무개의 사인은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에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하는 것 아니냔 의혹을 받았다.

신동욱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연이 있는 박용철, 박용수, 이춘상, 황XX, 허XX, 주XX 등 계속해서 미스테리한 주검이 발견됐다”며 “죄 없는 사람들 그만 희생시키고 내 목숨을 가져가라”는 글을 올렸다.국민일보 또 4일에는 “저와 관련된 사건 속 등장인물이 4년 동안 6명이 떠났다”고 주장했다.

주진우의 말에 따르면 이 주아무개라는 자는 죽은 박용철, 정용희라는 자와 함께 박근혜 주변에서 일을 봤었던 세 사람 중 하나로, 박용철 밑에서 활동을 했었고, 신동욱 관련 재판에 나와서 박용철, 박지만을 위해 증언을 했었던 핵심 관계자 라고 한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지만 평소 건강이 안 좋아진 기미도 딱히 없었으며 죽기 전에 이미 지인과 골프 약속도 잡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박지만 밑에서 궂은 일은 다 했던 사람으로, 박용철 사망 당일에도 박지만과 동선이 겹친, 다시 말해서 박지만과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아무개와 박지만의 사이가 틀어졌고, 정용희도 현재는 박지만과 사이가 소원한 상태인데, 아울러 주아무개와 정용희의 사이도 틀어진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주아무개의 죽음이 알려진 2017년 1월 1일 주진우와 주진우의 가족을 향해 어떤 자동차가 돌진을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아무개가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의 ‘박근혜-박지만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증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김용민의 브리핑(1월 3일자) 인터뷰에서는 최순실이 노승일에게 "너 그러다 죽어. 나 무서운 사람이야."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정두언은 1월 4일 방영된 강적들에 출연해서, 육영재단 사태 때 박근령측에서 도운 숭모회 회원 두 명이 '차치기'와 '퍽치기'로 죽었다고 말했다.

최재석은 색다른 가설도 내놓았는데, 바로 아버지 최태민의 죽음이 이 모든 의문사의 시발점이라는 것. 또 자신도 최순실에게 고용된 불량배들에게 협박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주진우-김어준 허위사실 유포 재판

이 사건을 취재하다가 박근혜 당선 전에는 조폭에게, 당선 후에는 검사에게 쫓겼다. (주진우)


이 사건은 발생 직후 후속 보도가 거의 없어 그저 4촌간의 금전관계에 의한 원한살인사건 정도로 묻힐 뻔 했으나, 김어준과 주진우는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8일 자신들이 진행하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봉주 24회에서 위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2011년 11월 이미 박지만측은 주진우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는데, 이는 주진우가 한 출판 기념회에서 "1964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에 가서 독일 대통령을 만난 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박지만은 나꼼수에서 제기한 의혹까지 합해서 다시 2012년 12월 김어준-주진우를 고소하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3달만인 2013년 5월 14일, 검찰은 박지만이 고소한 내용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다가 대통령 선거법 위반을 추가하여 주진우를 체포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시켰다. 검찰은 법원에 주진우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였고, 주진우는 14시간만에 풀려나왔다. 언론인을 이런 혐의로 구속하는 것은 1987년 이래 드문일로, 독재정권에서나 벌어진 일이었는데, 검찰은 박근혜에게 충성심을 보이려고 했는지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된 것.

결국 2013년 10월 김어준과 주진우에 대한 1심재판에서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배심원 평결)의 의견을 들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은 "대선국면에서 박근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사건을 왜곡하였다"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들은 위에서 나열된 여러 의혹들을 볼 때, 주진우의 의혹제기가 충분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무죄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상고하였지만, 2015년 1월, 2심에도 마찬가지로 무죄를 판결하였다. 검찰은 다시 이를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2016년 12월 현재 아직도 계류중이다. 

한편 주진우와 김어준은 2014년 8월, 이 사건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받고 증언을 청취하러 두바이에 간 바 있다. 김어준은 나꼼수에서는 항상 "쫄지마"라고 말했지만 이 사건은 워낙 관련자들이 위해를 당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팀을 조직해 신변을 보호하려 했다고 한다. 이 팀은 김어준과 주진우를 비롯해 국회의원 2명(정청래, 진선미), 변호사 2명(민변회장 한택근, 김용민), SBS의 배정훈 PD, 한겨레의 탐사보도팀 기자, 딴지 벙커1 PD 등 총 9명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두바이에 3박 4일간 원정하여 결정적인 제보를 녹화했다고 한다. 김어준이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라며 정청래 의원에게 동행을 부탁했고, 정청래 의원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선미 의원에게 동행을 부탁했다고 한다. 민변회장의 경우에는 김용민 변호사가 동참을 요청 했다고.

이 제보는 바로 2016년 12월 1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부가 방영되었다. 워낙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증언을 녹취하고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박근혜가 완전히 통치력을 상실할 때까지 2년간이나 공개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17년 11월 방송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도 다시 한번 이 '두바이 증인'이 등장했는데 증언을 완전히 공개 못하는 이유가 크로스체크, 교차검증이 불가능해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던중 사건 당일 '제 3자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와서 블랙하우스에서 인터뷰 내용이 일부 공개 됐다. 

2017년 12월 7일 김어준 주진우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를 두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내렸다.

진상에 대한 접근

2016년 12월 19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는 이 사건은 조폭 H가 저지른 청부살인사건이며, 살인을 지시한 사람은 "우리가 예상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발뉴스. 또,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 사건이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사실과 다르다면 그 배후의 추악한 권력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했고, 후속 취재는 이미 시작했고 추가로 들어온 제보의 확인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문고리 4인방’의 맏형 격인 고(故) 이춘상 보좌관이 조직폭력배와 한센인들이 대거 동원된 2007년 ‘육영재단 폭력사태’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7년 2월 5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박용철이 죽기 1년 전부터 그를 죽여달라는 살인 청탁을, 육영재단측 관계자가 복수의 인물에게 언급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그 살인 사주를 한 핵심인물 A씨를 찾아가봤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의 재수사

정권 교체 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9월 15일, 피해자 박용철의 유족들이 경찰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 재수사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017년 9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해당 사건이 배당, 재수사 절차에 들어갔다. 제3의 인물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나는 꼼수다 봉주 24회


2012년 12월 8일, 이 문제에 대해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방송. 이 에피소드 한편으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가 구속되어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까지 받게 된다. 참고로 이 방송내용은 그저 이 사건에 의혹이 많다는 점과 배후가 존재하지 않겠냐는 추정 정도로 끝났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배후를 특정인으로 확정하지 않았고 그저 추정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저 언론인의 의혹 제기를 문제삼아 검찰이 기소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1심,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건을 파기환송할 수 있으나, 애초에 배후를 추정하지조차 않은 의혹 제기 수준의 방송에 검찰이 무리수로 기소를 한 사건이기 때문에 무죄선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사실 이 사건에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언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한 상황에서는 유죄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고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2017년 12월 7일, 이들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주진우의 현대사 시즌2

2014년 11월 18일 방송되었다.

프로파일러 분석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본인의 팟캐스트에 2부에 걸쳐 범죄 분석을 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1 프로파일링에 따른 현장 재구성
박근혜 5촌 살인사건2 범인은 외부에 있다

신동욱 교수의 증언


2016년 11월 25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신동욱 교수의 증언과 주진우 기자의 취재로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는 바로 2016년 말 한국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라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신동욱은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도 출연해 다른 방송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밝히는 등,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참고로, 박용철은 태도를 바꾼 걸로 추정된 시기 이후 신동욱에게 '조심하시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1057회 방영분

신동욱은 2016년 12월 4일 SBS 본사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촬영을 마쳤다고 인터뷰하면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룰 예정임을 밝혔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취재 중인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는 2014년 주진우 김어준과 함께 해당사건의 중요 제보자를 만나기 위해 그가 도피하고 있던 두바이까지 동행했던 일명 두바이팀의 멤버 모 공중파 배PD로 추측된다. 

예고편

결국 2016년 12월 17일 방송이 확정되었다. 방송 제목은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의 진실이다. 위의 사건 설명에 나온 것처럼 의혹투성이의 기괴한 사건이니, 진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든 이 사건의 의혹을 파헤치는 보도가 이미 몇 번이나 나오고도 남을만하지만... 믿기 힘들게도 이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가 공중파 및 종편방송 등 주류방송 중에서 최초로 한 보도다. 이 사건 보도를 금기시하며 압력을 행사한 검은 세력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본 사건과 연관된 육영재단 내분에 대해서도 꽤 다루었으며, 추가적으로 알려진 일부 내용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동욱이 중국에서 모함 혹은 청부살인 당할 위기를 느껴서 빠져나갔다는 내용. 박용수가 마지막으로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알려진 북한산 산자락 입구에 출입 인원수를 카운팅하는 센서가 있었는데, 이 센서의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박용수가 자살하러 갔을 때 박용수 말고도 추가적인 인원이 카운팅 되어있었다는 정황 증거. 당시 박용철을 에스코트하던 사람중 한 명인 황 아무개가 어이없게도 사발면을 먹다가 사레가 들려서 죽은 듯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는데, 이 또한 의문사일 가능성. 그 사람에 대해 조사했던 주진우기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황씨는 청량리의 유명한 조폭 두목의 아들 겸 조직 행동대장이었고 평소 건강에 이상이 없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외 이 사건에 관련된 최소 1~2명의 행적이 오리무중이라는 이야기.

그것이 알고싶다 팀은 사건 추적을 진행하면서 경찰 측에 새로 든 의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지만, 경찰은 회피하기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승훈 PD는 자신의 SNS에서 '장준하 선생이나 마티즈에서 자살한 국정원 요원, 자살한 성완종 회장까지 자신의 집이 아닌 야산에서 자살했겠느냐?'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또한 2년 넘게 취재하면서 그알팀에게 중요 제보를 했거나, 인터뷰를 했거나,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의심되는 핵심 인물 중 다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김어준 총수가 2016년 12월 19일 방영된 라디오 방송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을 먼저 취재했고 공론화 시켰던 김어준-주진우 기자가 배정훈 PD에게 "반드시 누군가가 취재 편집본을 삭제할 테니까, 백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처음에 배정훈 PD는 '그들'이 그렇게까지 치졸한 짓을 못할 줄 알았는지 김어준이 한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취재를 진행하면서 '그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개인적으로 백업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직전에(!) SBS 편집 서버에서 모든 자료가 날아갔다. SBS 기술진이 복원을 시도했지만 그것조차도 불가능했다. 김어준이 한 경고가 예언이 된 셈이다.

이미 예고편까지 나간 상황에서 자칫 초대형 방송 사고가 터질 뻔했지만, 이 때 배 PD가 개인적으로 백업한 편집본으로 겨우 방송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가 방송을 막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방영 직전 방송국 편집실까지도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나 SBS 방송국 내에 그들이 심어둔 스파이가 있다는 의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대해 SBS측은 단순 오류라고 밝혔다. 물론 실제로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발표하면 방송국 자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니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사실 그대로 발표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긴 하다. 특히 SBS는 방영 당시 공중파 중에서 그나마 신뢰성이 있다고 여겨지던 방송사라 더더욱 신뢰성 문제에 고민했을 여지는 있다.

한편, 이 방송을 먼저 취재했던 주진우 기자는 그동안 다양한 권력 부패, 사이비 종교, 폭력 조직에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숱한 살해협박과 물리적인 살해 시도 및 납치 시도를 받아왔지만,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생애 가장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SNS를 통해 취재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한 조직폭력배가 주 기자에게 손도끼를 휴대하고 다니라 조언했을 정도라 한다. '그들'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쇠망치로 주진우 기자 머리를 노리고 있다고 했단다. 그 이후 김어준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에서도 밝히길 주 기자는 귀가 길에 어두운 집 앞 골목길에서 망치에 머리를 맞아 죽는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어준 역시 혼자 집에 있을때 가장 두렵다고 했다. 배PD는 둘의 이런 두려움을 2년간 함께 취재하면서 이제 자신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추가 취재가 이루어지고 있던 2017년 4월 6일, 배PD는 유의미한 제보가 있었다는 트윗을 남겼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017년 2월 5일 방영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룬 내용보다 조금 더 진전이 있었다. 방송을 통해 새롭게 공개된 내용들이 꽤 많았다.

우선 박근혜의 제부이자,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총재가 박용철이 뭔가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로 증언한 생전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그리고 박용철이 죽기 1주일 전, 지인에게 모종의 노트북과 휴대폰을 맡겼는데, 그 지인은 자신이 받은 휴대폰에 박용철이 존댓말로 10분도 넘게 길게 통화한 녹취파일이 존재했었다고 밝혔다. 박용철이 돌아와서 가게운영을 맡기길 기대했는데 뉴스에 박용철의 사망소식이 나오자, 깜짝 놀라서 휴대폰의 기록을 살펴 본 후 노트북에 백업해두고 휴대폰은 초기화시켜 냅두다가 시간이 지나 버렸다고 한다. 그 지인이란 사람이 제작진에게 제보해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확보한 것. 하지만 제작일로부터 10년이 지난 하드디스크였고, 잦은 포맷으로 인해 하드디스크 읽기 작업에 에러가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업체를 찾아가 디지털 포렌식 한 결과 상태가 불량해 복구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현재도 복구 노력은 계속 이어지는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또 범죄전문가들은 당시 박용수의 이동경로가 이상하다며 새로운 이동루트를 제시했다. 기존 이동루트를 따를 경우, 수면제를 먹은 사람이 야밤에 조명이 없는 산길을 걸어서 자살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도 않고,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남성 제작진이 낮에 같은 루트를 빠르게 걸어본 결과 1시간 40분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 사건이 박용수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최소 2~5인 정도 규모를 이룬 조력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을 매우 높이 보고 있었다. 따라서 조력자들이 있을 경우 기존에 알려진 루트와 달리 더 눈에 띄지 않으면서, 차량으로 시간도 단축하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를 제시했다. 이런 추론이 나온 이유는 전문가들 모두가 박용수가 사망 최대 30분 전 정장제를 먹었는데, 진짜 자살이라면 자살하러 가는 중에 설사약을 먹었을 리가 없다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고로 방송상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차량에 실려 이동하면서 설사약을 먹였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목을 매달아 자살 할 경우 괄약근이 풀리면서 변이 나온다는 말을 살인범이 듣고 연출하려 했다면 설사약을 먹인 것이 설명가능하고, 30분 안에 녹아 없어지도록 되어 있는 알약이 박용철 살해한 곳에서 걸어서 1시간 40분 거리에서도 위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차량을 이용해 실어날랐다면 상당한 시간 단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익명으로 제보 할 경우 목숨이 위험 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를 자청한 제보자(마성태 씨)가 있었다. 그는 박용철이 죽기 1년 전 쯤 육영재단측 관계자로부터 박용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주장했는데, 마성태 씨 외에도 비슷한 부탁을 받았다는 모자이크 처리된 다른 진술자의 증언까지 방송되었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판단한 제작진은 살인 사주를 한 핵심인물로 지목 된 A씨를 찾아가봤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방송되었다. 그리고 이런 추가 수집 내용을 근거로 경찰서에 재수사 할 의향이 없냐는 문의를 했지만, 경찰서는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나 물증이 없는 한 재수사는 어렵다는 기존 태도만 고수했다. 방송에서는 경찰 조사에 없는 증거와 증언들을 나열하면서 과연 재수사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박용철의 인맥도를 만드는 중이며, 진상을 밝히는데 필요한 핵심 인물들을 추려낸 듯 하다.

이규연 국장은 방송 말미에 언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수사권을 가진 검경이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을 은연 중에 어필하기도 했다. 또한 이번 인터뷰로 얼굴을 드러낸 내부고발자와 그 외 많은 내부고발자들을 지키고, 또 다른 내부고발자들이 나와주기를 바라면서 이런 이들을 위한 많은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방송을 끝맺었다.

판도라(MBN) 2017년 10월 16일 방영분

MBN 시사예능프로 판도라에서 정청래 전 의원이 발제하고 게스트로 온 주진우 기자가 거들면서, 이제까지 이 사건이 뭔지 자세히 몰랐던 시청자들을 위해 개괄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 내용은 이 문서에 서술된 것들을 읽으면 대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2017년 11월 4일, 5일 방영분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1회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배정훈 PD와 김어준이 보드에 박근혜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도를 구성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었는데, 위에 서술된 내용들이 거의 다 언급되었으며 이 방송에서 추가로 언급된 것은 묵혀져 있던 두바이 제보와 새로 공개되는 제보들이었다.

3년 전 두바이에서 김어준, 주진우 기자, 배정훈 PD는 살해 직전 술자리에 동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 제보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보내도 될 정도로 사실인지 크로스 체크할 여력이 없었으므로 묵혀 두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문제를 다룬 이후 추가 제보가 들어왔는데 북한산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 제보가 두바이 제보를 확인시켜주는 셈이 되었다. 따라서 두 제보를 이 방송에서 모두 공개하게 된다.

목격자는 해당 지역에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끊임없이 맞는 장면을 보았다고 제보했으며, 그날이 사건 당일인 9월 6일임을 확신하는 이유는 9와 6일 반대로 해서 나란히 놓으면 성관계의 특정 자세를 의미하는데, 그날 자신이 파트너와 북한산 내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하기로 만났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이로써 두바이 제보자가 주장한 대로 살해 사건에 제3자가 개입되었다는 설이 좀 더 힘을 얻게 되었다.

2회에서는 두바이 팀의 자세한 얘기가 나왔는데 2014년 인터뷰임에도 정윤회, 최순실이 엮여있다는 증언이 나왔었고 북한산 목격자와 동일한 내용의 주장(차종과 인원수)이 나옴으로써 제3자가 개입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사건에는 조선족 조폭이 연루되었다고 하며 그 조폭들이 사용하는 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자들이 연루됐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저 두바이로만 모일 것을 약속하고 일정도 알리지 않은 채로 만난 두바이 팀이 3일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제보자와 같이 귀국하려고 공항으로 이동할 때 의문의 차량 4대가 두바이 팀을 따라잡았고 제보자는 황급히 택시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의문의 차량들은 제보자를 쫒아갔다고. 그 와중에 같이 갔던 정청래 의원은 핸드폰을 원격 해킹(!) 당하기까지 했다.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1회



그동안 자신들이 취재하고 추측한 사건의 내막을 '우리도 그렇게 추측했고 방송을 보는 여러분도 짐작했을 테지만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식으로 모종의 암시로만 언급했던 데 비해, 이번 방송분에서는 상당히 일목요연하게, 거의 실명 언급 바로 직전까지 가는 수준으로 직설적으로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즉, 교차검증(크로스체크)이 가능하며 법적인 증거로서 효력이 있는 증거와 증언을 상당히 많이 확보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방송 중에 '경찰이 한 번 덮었던 사건이라, 치부로 여겨서 다시 한 번 덮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자신들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증거를 확보하였음을 은근히 드러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도록 경찰을 압박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 측에서 추측하는 사건의 내막을 정리하면 이렇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의 이권 다툼 과정에서 불량배들을 동원한 폭력사태가 다수 벌어졌다. 첫 번째 다툼(90년)에는 박지만과 박근령이 한 편으로 박근혜와 분쟁을 일으켰지만, 두 번째(08년)에는 박지만과 박근혜가 한 편이 되어 박근령측을 몰아냈다. 이 와중에 박용철은 박지만측의 지시를 받고 칭다오에서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을 살해하려고 시도하지만 (이것이 소위 '칭다오 사건'이다) 신동욱이 구사일생으로 달아나 다리만 부러지고 살아남았다.
문제는 박근혜가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생겨났다. 당연하지만 대통령 후보와 그 남매들이 재산다툼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폭력배가 동원되고 살인청부까지 벌어졌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당선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최씨성을 가진 모종의 인물의 지시로 신동욱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당사자 박용철이 제거되었고, 이후로 박용수를 비롯, 사건에 대해 알고 있고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한 소위 얼굴마담격 인물은 박지만의 비서인 정용희인데, 그는 사실 정윤회의 수하였다.


이 사건의 제보자 중 한 명인 마성태 씨가 직접 출연했다. 마성태는 과거 용역깡패로 일하다가 육영재단 사태 때도 가담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마성태와 그의 부하들은 계약직으로 고용돼 당시 육영재단 임시 이사장을 맡은 이원우의 경호를 맡았고, 계약 기간 만료가 되며 그대로 육영재단에서 나왔다고 한다.

육영재단 세력 싸움에서 밀려난 박용철이 육영재단 노조와 함께 민주노총까지 끌어들여 시위를 이어가자 당시 박지만의 비서인 정용희는 마성태에게 박용철을 손봐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마성태는 사람 죽이는 일은 안 한다고 거절하고 이후로 육영재단과는 손을 끊었는데, 결국 박용철이 피살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성태는 정용희에게 전화해 다음에는 내 차례냐고 묻자 정용희는 당황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성태는 한동안 도피 생활을 했고,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성태는 박용철을 누가 죽였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박용철 주변인물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그랬는지 짐작은 하고 있으며 사건의 특성상 오히려 박용철 스스로가 믿고 있던 최측근에게 살해됐을 확률이 높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편 마성태는 EG 사무실에서 정용희를 비롯한 사람들과 본격적인 상견례를 겸했다가 칭다오 납치사건 이후의 신동욱을 봤다고도 말했다. 신동욱이 다리를 절면서 EG 사무실로 찾아와 난리를 피우자 정용희는 신동욱이 못 찾도록 숨었고, 신동욱이 쫓겨나자 박용철이 일을 제대로 처리 못했다며 푸념했다고. 마성태는 인터넷 기사를 자주 찾아봤는데, 당시에는 신동욱이 누군지 몰라 그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이 때 신동욱이 주로 언급했던 사람이 정윤회라서 마성태가 한번은 정용희에게 정윤회가 누구냐고 묻자, 그 어르신은 얘기는 왜 나오냐며 정색하는 등 당시 정용희의 행동은 박지만의 비서라고 하기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는 게 아닌가하고 미심쩍었다고 한다. 주진우 기자는 정용희가 박지만의 비서실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육영재단을 비롯해 박근혜와 정윤회 등의 일도 다 맡아서 봤으며, 실제 정윤회의 친척임이 밝혀지며 EG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성태는 본인만큼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육영재단 사태 때 같이 일했고 정용희가 마성태에게 박용철을 손봐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동행한 인물이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이라고 밝혔다 어두운 과거를 가졌음에도 직접 나와 사건에 대해 말한 자신처럼 그 사람도 용기를 내 이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해주기를 부탁했다. 주진우 기자가 덧붙인 바로는, 마성태가 지목한 이 사람은 정용희의 후임으로 박지만의 비서로 일했고 김어준과 주진우가 5촌 살인사건 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는 둘의 구속을 주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입장이 바뀐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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