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1일, 특수강간 등 전과 11범의 30대 남성이 출소한 지 43일 만에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사망하고 4명에 부상을 입혔다가 검거된 사건. 당시 수원 토막살인사건이 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으며 정작 진범인 강씨는 12월에 사망해서 단죄를 받진 않았다.
강남진(39)은 시골 출신의 3남 1녀의 차남이었다. 집안은 가난했고 부모는 읍내에서 생선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범죄를 저질렀다. 읍내의 고교를 2학년 때 중퇴한 강씨는 16세 때부터 부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존속폭행으로 두 번이나 전과를 기록했고, 그 가운데 한 번은 징역 1년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20대를 거치면서는 폭력행위, 음주운전 등 다양한 전과 기록을 쌓았는데, 특히 20대 초반부터 3번이나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 읍내 시장거리에서 40대 술집 여주인을 강간했지만, 피해자가 보복을 두려워해 처벌을 원치 않는 바람에 감옥행은 피했지만 7년형을 선고받은 2005년의 특수강간죄의 경우, 다방 여종업원을 칼로 위협해 강간한 뒤 여종업원의 신체에 이물질을 삽입하는 변태적 행위도 동반되었다.
강남진은 인력소개소를 통해 공사장 막일을 나가 하루 8만원 정도를 벌기도 했고, 인근 공장 취업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값으로 많이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강남진은 2012년 7월 13일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산하의 한 보호소에 입소했다. 그는 보호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사판을 전전했다. 보호소는 윤씨의 가게로부터 1㎞, 고씨의 집에선 700m쯤 떨어져 있다. 범행 당일 아침에는 “치매로 요양 중인 어머니를 뵈러 안산에 며칠 다녀오겠다”며 외박계를 제출하고 보호소를 나섰다.
8월 20일 오후 4시, 수원 성균관대역 부근 술집에서 강남진은 소주 4병을 마신 뒤, 밤 9시 50분부터 파장동의 S 주점에 들어가 1시간 50분 가량 양주 1병을 더 마셨다. 이때 술값 문제로 주인과 실랑이가 붙었고, 경찰에 부당한 값을 요구한다며 신고해 지구대 경찰이 출동까지 했었다. 경찰의 중재로 강남진은 2만원을 받아 나왔다. 그는 진술에서 자신을 홀대한 S 주점 주인에게 보복을 위해 혼내줘야 겠단 생각이 들어 21일 범행 한시간 전에 마트에서 과도를 구입했다. 하지만 S 주점을 찾지 못해 배회하던 중 윤모(39·여)씨가 운영하는 술집을 보게된다.
8월 21일 0시 55분, 장안구 파장동의 윤모씨가 운영하는 주점에 들어가 혼자 있던 윤씨에게 칼을 들이대며 "문 잠가라, 옷 벗어라"고 위협해 강간을 시도했다. 윤씨의 저항으로 실패하자 목을 찌르려고 칼을 휘둘렀고, 마침 가게를 찾아온 임모(42)씨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났다. 강남진은 추척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까지 버리고 도망갔다.
강은 500여m를 달아나 정자동에 도착했다. 배회하다가 마침 문이 열려 있던 고모(65)씨 주택에 들어간다. 과도를 든채 거실까지 들어온 강남진은 “누구냐”며 놀라 고함을 지르며 저항하는 고씨의 배와 가슴을 10여차례 마구 찔렀다. 남편의 비명소리를 듣고 거실로 뛰쳐나온 아내 이모(60)씨와 아들 고모(34)씨도 가슴과 팔을 수차례 찌른 범인은 달아났다. 방안에 딸이 있었지만 그가 뛰쳐나왔을 땐 이미 도주한 뒤였다. 강씨는 100여m쯤 달아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강이 휘두른 흉기에 맞은 고씨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다. 임씨는 복부에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의 아내와 아들, 윤씨도 팔과 가슴 등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그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전자발찌법이 제정된 2008년 이전 범죄자로 전자발찌 착용이나 신상정보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 검기 이후 태연하게 “이번에 들어가면 다시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을 술에 많이 취했으니 3~4시간만 자고 다시 조사받겠다”라고 했다. 거기다가 8월 23일 오전 수원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나는 어차피 사형을 받을 것이니 영장실질심사와 현장검증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수원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강남진은 12월 16일 오전 10시 25분부터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해 구치소 의료과에서 진료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돼 종합병원으로 이송 도중 12월 18일 오전 11시 46분에 사망했다. 이날 오전 9시 교도관들이 인원점검을 할 때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