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신촌역 근방의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창천동 근린공원 살인 사건이라고도 하며, 인터넷 상에 떠돌던 정모괴담 + 현피가 최악의 형태로 실체화된 사례다.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오후 8시 20분경, 박모 씨(20, 여)의 사주를 받은 고등학생 이모 군(16세)과 대학생 윤모 씨(18세, 남)가 대학생 김모 씨(20세, 남)를 신촌역 인근의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으로 유인하여, 고등학생 홍모 양(15세)이 망을 보는 사이에 칼과 쇠막대로 폭행하여 살해한 뒤, 시신을 4~5m 떨어진 풀숲에 유기한 사건이다. 잠시 후 지나가던 환경미화원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김모 씨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수사가 시작되었다.
요약하자면, 악마나 악령 쪽을 믿는 인터넷모임에서 회원(주로 청소년)들에게 '마녀'로 추앙받으며 지지를 받고 몰입하며 '저주의 주문' 등 사령관련 행위를 많이 하던 여자친구에 대해, 남자친구가 그런 몰입도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여 말리는 일이 잦아지고 이를 통해 자주 다투게 되자, 여자친구가 자신을 따르던 회원들 몇명에게 "남자친구가 자신을 괴롭힌다"며 자주 부추기고, 결국 그녀를 따르던 그들과 그들의 친구가 그 남자친구를 살해한 사건이다. 당초 언론에서는 치정 문제에서 비롯된 인한 살인으로 보도했으나, 피해자 지인들의 인터넷 제보로 사건의 정황이 알려지게 되었다.
2011년 3월 피해자 김모 씨가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 가해자 박모 씨를 알게 되었다. 2012년 1월 1일, 김모 씨는 박모 씨에게 고백하여 사귀게 되었다. 또 다른 가해자인 이모 군과 홍모 양은 박모 씨의 소개로 김모 씨와 알게 되었다.
김모 씨는 여자친구 박모 씨가 네이버 카페 중 하나인 '사령카페'라는 곳에 가입한 것 때문에, 여자친구를 포함한 사령카페의 회원들과 갈등을 겪었다. 박모 씨는 사령카페에 가입한 후부터 자신을 '악령계에서 인증을 받은 진짜 마녀'로 자칭하며 영혼 소환 의식을 치른다고 말하고 다녔다. 박모 씨는 이모 군과 홍모 양을 사령카페에 끌어들였으며, 김모 씨 역시 호기심에 사령카페에 가입했는데, 김모 씨에게는 사령카페 특유의 놀이문화가 몹시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서 얼마 안 가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모 씨는 김모 씨와는 달리 사령에 푹 빠져 지냈다. 박모 씨는 사령카페에서 자신을 진지하게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가진 마녀라고 주장하면서 카페에서 활동하는 10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또한 박모 씨는 사령카페 이외에도 공포이야기 갤러리에서도 활동했고 카톡에 GH라는 이름의 대화방까지 만들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다가 탈퇴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300개 이상의 톡이 올라오는 격렬한 곳으로,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모임에 몰입해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평소 박모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에 반대를 하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한 여고생이 사령카페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탈퇴하겠다는 글을 올리자, 채팅방에 사람을 모아서 그녀를 저주하기도 했고, 공이갤에서 박모씨가 사령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갤러와 키배가 벌어졌고 박모 씨가 먼저 그에게 욕설을 한 후 차단했다고 한다.''' 같은 길드원이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먼저 PvP를 제안했으면서도 자기가 지면 심하게 정색하고 욕설을 퍼부어댔다는 증언도 있다.
이러한 박모 씨를 지켜보던 김모 씨는 '여자친구가 변했다'고 생각해서 박모 씨를 돌려놓으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심한 마찰이 생겼다고 한다. 평소 박모 씨는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남친이 사령카페에서 탈퇴하라고 강요하는 이유도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자 김모 씨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며 박모 씨에게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모 씨의 지인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사령카페에 물들어서 이상해진 게 아니라 원래 허세가 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박모 씨의 입장에서는 멀쩡한 자신을 두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남자친구 김모 씨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또한 박모 씨가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나쁜 평판을 퍼뜨리고 다니는 바람에, 김모 씨는 어느덧 박모 씨의 인맥 사이에서 박모 씨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이 무렵에 이미 연인 관계는 끊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어느 날 김모 씨는 박모 씨와 같이 사령카페에서 활동하던 가해자 이모 군과 카톡을 주고받다가 "김모 씨는 리더 자격도 없으면서 회장을 맡았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이모 군의 모습을 보고 이모 군와 홍모 양의 신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판결문에서도 김모 씨가 욕설을 한 것은 인정되고 있다. 물론 키배의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욕설을 하며 거칠게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연히 욕설을 듣거나 협박 문자를 받았다는 것이 사람을 죽일 정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후로 이모 군과 김모 씨의 사이는 무척 나빠지게 된다, 그러자 가해자들은 박모 씨를 중심으로 카카오톡에서 김모 씨만 따돌리고 다른 채팅방을 만들었다.'즉, 김모 씨를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집단따돌림을 시작한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게 된 김모 씨는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고, 이모 군에게 200여 차례 문자를 보내는 등 갈등을 지속했다.
4월 24일, 박모 씨는 블로그에 '네(김모 씨)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당시 이 글에 살인 사건 가해자들이 '확인 완료'라는 댓글을 달았다고 기사 등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사실 확인 완료 댓글을 단 것은 피해자 본인과 제3자이다.
아무튼 사건 당일의 "김모 씨를 혼내주고 싶다"는 발언까지 고려해 보면, 박모 씨는 김모 씨를 죽이겠다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고 사건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모 씨가 이런 발언을 계속 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이모 군은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틱톡)에도 '김ㅇㅇ을 죽여버려야겠다'는 글을 남겼고, 29일까지 "죽여 버려야겠다. 이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수 차례 남겼다. '이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란 공범 윤모 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모 씨는 자신의 언행이 과격했던 점을 반성하고 박모 씨와 그녀의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려고 했다. 김모 씨는 이전에 욕설을 했던 것 등을 후회하며 "정말 미안하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 안 나."라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사과를 했다.
만남을 먼저 요청한 쪽은 김모 씨였다. 김모 씨의 계획은 일단 이모 군에게 사과하고 나서 박모 씨가 사령카페에서 무사히 탈퇴하도록 이모 군 일행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이 행동이 김모 씨의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박모 씨는 이들에 의해 사령카페에 잡혀있는 상태가 아니고, 위에서 언급했듯 이미 사령카페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즉 자기 의사로 가입해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보도를 참조하면, 이 시점에서는 오히려 사령카페에서도 떨어져 나와 카톡에서 자기들만의 모임을 가지면서 친목질을 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오히려 카페에 있을 때보다 폐쇄성은 더욱 강화된 집단으로, 박모 씨가 그 중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김모 씨는 주말을 맞아 시간을 내서 서울 집으로 상경했으며, 신촌에서 박모 씨와 함께 이들을 만났다. 김모 씨는 선물로 그래픽 카드를 사가지고 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피해자 김모 씨가 살해된 뒤 이 그래픽 카드는 가해자 일당이 절취했다.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자신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분노의 표현으로 욕설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서툴지만 화해의 손길을 뻗었음에도 오히려 이를 이용해 살해한 점, 범행도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어떤 흉기를 쓸 것인지 의견을 나누거나 피가 튈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계획적으로 살인을 준비했다." -판결문
그러나 화해를 기도했던 김모 씨와는 달리, 범인 일당은 당시 이미 김모 씨를 살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물론 김모 씨는 설마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범행 전날인 4월 29일, 피해자 김모 씨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이모 군의 집을 찾아가겠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범인 이모 군은 공모를 하고 있던 윤모 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김모 씨에게 다음날(30일) 오라고 말해서 돌려보냈다. 이모 군은 그 동안 윤모 씨와 연락하여 범행 준비를 했다.
범행 당일 4월 30일, 이모 군은 윤모 씨에게 흉기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으며, 윤모 씨가 제압하고 이모 군이 칼로 찌른다는 범행 계획도 모의했다.
4월 30일, 오후 6시. 윤모 씨는 흉기로 사용하려고 단검 1자루와 발리송 1자루를 준비하여 약속장소로 움직였다. 나중에 경찰에서 이모 군은 이 때 박모 씨에게 "오늘 김모 씨를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으나, 박모 씨는 "(이모 군이 김모 씨를) 손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상적인 다툼 수준일 것이라고 여겼다."면서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오후 7시 무렵, 김모 씨는 서울에서 함께 다니고 있던 자신의 친구와 헤어져서 혼자 신촌으로 갔다. 하지만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다른 6명의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계속했다.
오후 7시 23분, 김모 씨는 범행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하고, 이모 군과 홍모 양을 만나서 사과하고 박모 씨를 사령카페에서 꺼낼 생각으로 선물(그래픽 카드)을 들고 신촌(이모 군의 집 근처)으로 가고 있다고 지인에게 메신저로 알렸다.
7시 30분에는 이모 군과 홍모 양, 박모 씨가 이모 군의 집에 있다가 피해자 김모 씨를 만나러 집을 나섰으며 범행 장소로 가던 중에 윤모 씨를 만났다. 이모 군은 이때 윤모 씨로부터 흉기를 건네받았고, 박모 씨는 자신의 집으로 간다며 전철역으로 가서 일행과 헤어졌다.
신촌먹자골목에서 만난 이들은 일단 이모 군의 집으로 이동했으며,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여자친구였던 박모 씨는 도중에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범인들 가운데 이모 군, 윤모 씨, 홍모 양과 피해자 김모 씨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김모 씨를 인근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으로 유인했다.
바람산어린이공원은 신촌역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지리가 으슥하여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저녁 8시 13분, 김모 씨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왠지 수상하다."는 카카오톡 메시지(이미지 참조)를 친구에게 남기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공원 계단에 설치된 CCTV에 가방을 메고 이모 군과 윤모 씨의 뒤를 따라 오르는 김모 씨의 모습이 촬영되었다. 홍모 양은 범행 현장 부근에서 대기했다.
이모 군은 김모 씨와 말다툼을 하면서 살해할 기회를 노렸다. 김모 씨가 노트북을 켜려는 순간, 윤모 씨는 김모 씨를 등 뒤에서 전선으로 목을 졸라 제압했다. 이모 군은 미리 윤모 씨에게 받아두었던 칼로 김모 씨를 10여 차례 찔렀다. 김모 씨가 "미안하다. 살려달라"며 애원하고 소리치며 반항하는 것을 보고, 윤모 씨는 김모 씨를 넘어뜨리고 칼과 현장에서 발견한 둔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김모 씨를 공격해서 살해했다.
결국 김모 씨는 머리, 목, 배를 중심으로 흉기와 둔기로 40회 이상 난자당해 일부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처참한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범인들은 피해자가 숨진 뒤에도 뒷목에 흉기를 2차례 내리꽂았다.
범행 직후 이들은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피해자 김모 씨의 시신을 길 바로 아래 언덕으로 밀어서 시신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수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긴 해도 조금 살펴보면 눈에 쉽게 뛸 장소에 불과했고, 핏자국이 흥건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주민이 발견하고 신고했으며, 경찰도 손쉽게 시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시체를 숨겼으니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핏자국을 지울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더 자세히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이 핏자국을 지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준이 아니라 아예 환경미화원이 청소하면서 시체를 치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도 대충 숨겼던 것이다. 아무리 미성년자들이라 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한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사고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판결 후 일을 저지르고 난 이후에 그들이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는, 그야말로 이들의 상식 수준이 어디까지 비정상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그야말로 중2병 돋는 내용이었는데, "세상엔 하루에 3만 건의 살인이 일어나며, 3만 1건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대목은 그야말로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지경이다.
범인들은 김모 씨를 살해한 다음, 김모 씨의 노트북과 김모 씨가 자신들에게 줄 선물로 가져왔던 그래픽 카드 등을 절취해서 잠시 공원을 떠났다가, 곧 돌아와서 김모 씨의 휴대전화를 수거했다. 그 외에 노트북, 헤드셋 등이 들어있는 가방도 가져갔다. 이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는 생각으로 김모 씨의 휴대전화를 부순 다음 물 속에 담궈뒀다. 또 범행 뒤 이들은 지갑도 함께 꺼내오지 않은 것을 불안해하며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피 묻은 옷도 가져와서 집에 숨겨놓고 적당한 날을 골라 불태우려고 계획했지만, 사건 하루만에 경찰에 붙잡히면서 오히려 증거품으로 압수되었다.
애시당초 공원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CCTV에 얼굴이 다 찍혀있었기 때문에 모든 증거 인멸 시도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게다가 목격자도 속속 발견될 정도로 계획부터가 상당히 어설펐고 당연히 어렵지 않게 검거될 수 있었다.
2012년 4월 30일 오후 8시 47분, 김모 씨의 시신이 인근 주민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범인들이 시신을 제대로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도 안 되어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다.
8시 49분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김모 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김모 씨를 걱정하던 친구들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김모 씨를 걱정한 친구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김모 씨의 행방을 찾았는데, 당연히 범인들에게도 연락을 넣어 김모 씨의 행방을 추궁했으나 범인 이모 군은 "(김모 씨와) 잘 헤어졌는데 왜 계속 물어보냐?"고 대답했고, "김모 씨가 실종돼 경찰에 신고했고, 마지막으로 본 게 당신이니 뭐하고 헤어졌는지 말해 달라."고 묻자 "집에 안 갔나? 좀 싸우긴 했지만 잘 갔고 신촌이랑 이대 쪽 사이에서 헤어졌다."라고 대답하며 태연하게 부정했다. 마침내 경찰에 전화를 하여 김모 씨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건 당시 김모 씨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 노트북, 그래픽 카드, 현금 등이 없어져 강도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하는 정황도 있었으나, CCTV에 김모 씨가 이모 군와 함께 공원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찍혀 면식범에 의한 범행으로 정황을 파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당시 범인들은 "이 사건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수사방향이 자신들이 아는 사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완전범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화를 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5월 1일, 범행 직후 "내일 데이튼데 헤롱대면 때찌할거야.", "내일 오빠 옆에서 자게 해줘, 바보, 사랑해, 잘 자구, 내 꿈꿔" 등의 메시지를 나누며 데이트를 약속했던 이모 군와 홍모 양은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체포되었다. 하지만 홍모 양은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일시적으로 풀려났다. 이들은 살해 후 바로 다음날부터 애정행각을 벌이고 데이트를 했다.
5월 1일 오전 11시 30분 쯤, 박모 씨의 주변에서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박모 씨는 태연하게 부정했다.
5월 2일 오전 7시 30분, 윤모 씨가 경기도 의정부시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5월 29일 정황 부족과 소년법에 의해 영장이 기각 되었던 피의자 홍모 양(15)과 불구속 수사중이던 박모 씨(21·여)가 살인방조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됐다.
피해자의 아버지 김모 씨는 가해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형을 가볍게 하려고 한다면서, A4 용지 7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나서는 등 엄한 처벌을 요구했다. 김모 씨는 가해자들이 보낸 편지를 개봉하지도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10월 8일 검찰은 가해자 윤모 씨에게 무기징역, 박모 씨에게 징역 12년, 이모 군, 홍모 양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중형이 구형된 까닭에 대해서 검찰은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사전에 계획된 범행이며,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들이 전혀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사죄나 보상도 없었다." 하여 개심의 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욕설문자를 보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해자를 숨지게 했으며 숨이 끊어지고 난 뒤에도 뒷목에 흉기를 2차례 내리꽂고 시신을 유기하는 등의 행위는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장난인 줄 알았다는 피고인들의 진술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며 이들의 만행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피해자의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탄원서를 보내서 범인들의 엄벌을 요청했다고 한다.
피고측 변호인은 "검찰이 사전 모의했다고 주장하는 살인 계획은 스마트폰 대화방에 문자 몇 건 올린 것이 전부.", "온라인 채팅 특성상 진지한 대화는 별로 없고 대부분 간접표현."이라면서 범행의 계획성을 부인하고 우발적인 살해임을 호소했다. 물론, 우발적인 살해라고 해도 살인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10월 2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 김종호 부장판사는, 이모 군과 윤모 씨에게 각각 징역 20년, 홍모 양에게는 단기 7년, 장기 15년, 박모 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013년 5월 9일 대법원 3부는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2014년 9월 3일,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판사 이경춘)는 피해자의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 등이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가해자 측 항소를 기각하여 1심재판을 확정지었다. 1심에서의 판결은 가족에 대한 정신위자료 2억 원, 장례비 450만 원, 그리고 피해자가 살아있었을 경우의 일실수입 2억 3,900만 원 등 총합 4억 5,440만 원. 일단 윤모 씨와 박모 씨는 성인이라 가족들이 대신 낼 의무가 없으므로 출소 후 스스로 내야 할 듯 싶고, 이모 군과 홍모 양은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홍모 양의 가족들이 이에 반발하였으나, 재판부는 "감독, 교육의무를 게을리하여 홍모 양이 살인에 공모했으므로 가족이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민법은 '감독자책임'이라 하여 "미성년자에 대한 감독을 게을리한 부모는 무자력인 자녀와 연대하여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부분 현실에서 온전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경찰청 프로파일러의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한 피해자인 김모 씨와 사건 가담자로 지목된 박모 씨는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통해 만났다고 알려졌다.
"처음 블로그 만들었을 때 그냥 합성 그림 저장용으로만 쓰일 줄 알았지만, 다른 네티즌들을 만난 후로 점점 커져갔다."
"네티즌들과 같이 합작공동 그림도 만들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추억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인맥이 넓은데 학과 친구들은 나보고 혼자라고 한다. 그런데 혼자는 아니다. 친구라는 건 꼭 학교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내일 OO대로 간다.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여서 좋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왜 난 그런 부탁 같은 것을 못하지? 어쨌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었으니까 나중에라도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달라고 해야지."
-본인의 블로그
피해자의 고등학교 동창 정모 씨는 트위터에서 "얘가 중ㆍ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굳세게 살고 대학교를 가서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자랑했다."며 "하늘에서만큼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
2012년 12월 18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자동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와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피해자를 살해한 후 피고인들은 이 사건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수사방향이 자신들이 아는 사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완전범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화를 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 진지한 반성을 하기보다는 변명으로 피해자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더욱 확대시킨 점 등에 비춰 보면 죄질이 매우 불량해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 판결문
박모 씨
피고인 P는 L의 과외선생님이자 대화방의 리더 역할을 하던 대학생으로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서 피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내고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다른 피고인들의 살해결의를 강화시킨 점,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진지하게 반성하기 보다는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죄책이 매우 무겁다. - 판결문
통칭 '노래하는 레카', 당시 20세.
김모 씨의 여자친구로 3년전 마비노기에서 만났다고 하며, 사건 개요에 적힌 사연으로 김모 씨와 사이가 틀어졌다. 공상적인 인물로 주변 인물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마녀 드립을 치고 다녔으며 날개를 장비하고 치유마법을 사용한다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에 다른 3명과 함께 김모 씨를 만났으나 바로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살인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3명이 평소 김모 씨와 사이가 어떤지도 알고 있었고, 그들이 흉기를 준비해 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말리기는커녕 이모 군 등에게 "김모 씨를 혼내주고 싶다."라면서 그들을 부추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행동들이 범행이 발생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에, 살인방조 혐의로 우선은 불구속 입건. 대부분 직접 청부만 안 했지, 사실상 살인교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레벨. 그래서 경찰도 3일에 다시 불러 재조사를 했으며, 혐의가 적용될 부분이 있으면 살인교사죄를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대화방에서 "진심으로 김모 씨를 죽이면 좋겠다."고 발언하는 등, 다른 사람이 김모 씨를 살해함에 있어서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게 하여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어 살인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에서 징역 12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에서는 복원된 스마트폰 그룹채팅의 내역을 보면, 살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피해자의 지갑에서 돈을 나누자고 제안하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한다.
최후진술에서 "홧김에 한 말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날 줄 정말 몰랐다.", "내 말들이 얽혀서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정말 몰랐다.", "그 아이(피해자 김모 씨)와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들은 바도 제대로 없다.", "억울하고 괴로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적반하장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모 씨 측의 변호인은 "이모 군과 윤모 군이 김모 씨를 살해한 것은 살해현장에서 김모 씨가 반항과 공격을 하자 격분해 저지른 것으로, 이전에 박씨가 '김모 씨를 혼내주자'고 말했던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살인의지가 강화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으며, "박모 씨가 살해현장에 있던 이모 군 등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살해현장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았다. 살인을 방조하거나 묵인하려는 고의성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모 씨 측 변호인은 "박모 씨는 김모 씨가 숨진 다음날이 돼서야 친구 A씨와 통화를 하며 김모 씨의 살해소식을 들었다."며 A씨를 살인방조 혐의를 입증해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제와서 자신이 생각한 의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죽여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발언한 것은 사실이라 이 변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살인방조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살인방조 혐의로 기소된 것치고는 상당히 처벌이 무거운 편인데, 판결문에 따르면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며 변명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죄질이 매우 나빠 중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박모 씨는 현재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확인조차 되지 않은 채 모두 그대로 우편함에 꽂혀 있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보통 흉악범의 가족들이 의절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박모 씨 역시 비슷한 결말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모 군
제목 : 죽음 문답
누구나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관문
나는 3~4번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
-이모 군의 블로그
통칭 '키네마' 당시 16세. 고등학생.
박모 씨로부터 과외를 받던 학생이다. 이전부터 김모 씨와 몇차례 직접 만났다고 한다. 김모 씨를 살해하려는 뜻을 윤모 씨에게 밝혀 윤모 씨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블로그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나?"라는 문항에는 "몇몇"(이 있다)이라고 적으며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범행 다음날 태연히 시험을 보러 학교에 나갔으며, 피해자의 지인이 카카오톡을 통해 행방을 묻는데도 침착하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무기징역을 구형받아 마땅하지만 소년법으로 보호를 받았다.
최후진술에서 피고인 석을 이탈하여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쇼 같은 행동으로 보였는지 유가족들은 이모 군을 향해 "내 아들 살려내라!"고 절규했다.
그런데 살인 등으로 오히려 검찰의 구형량보다 많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계획 살인이자 집단으로 저질러진 살인이고 주동자가 이모 군이기 때문에 죄질에 매우 나빠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함이 마땅하나, 범행 당시에 소년법이 적용되어 선고 형량에 제한이 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을 선고하였으며, 안양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앞서 말했듯 소년법이 그나마 형량을 줄여준거며 그럼에도 검찰이 구형한 15년에서 5년이 더 추가 되었다. 미성년자는 소년법에 의거해 사형과 무기형의 경우 15년의 징역, 특처법 가중범의 경우 최대 20년이 최대치라 재판부로써는 특처법 가중범으로 정해서 최대 형량을 때린것이다. 이놈은 소년법이 살려준 케이스. 하지만 2019년 시점부터 징역 20년의 1/3을 채웠으므로 공범 윤모씨와 함께 가석방 대상이다.
윤모 씨
당시 18세. 대학생.
홍모 양의 소개로 코스프레 카페에서 만난 이모 군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평소 이모 군과는 인터넷으로 알게 되어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으며, 이모 군으로부터 김모 씨를 살해하자는 제안을 받고 거기에 가볍게 응하였다. 김모 씨와는 딱히 면식도 없고, 갈등 관계에도 크게 영향이 없어 잘 알지도 못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칼 2자루를 준비해 왔으며 1자루를 이모 군에게 주었다. 또 범행 도중에 전선으로 김모 씨의 목을 졸라 제압하고 이모 군이 칼로 찔러 죽일 수 있도록 도왔다.
윤모 씨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 하자고 한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는데 흉기를 준비해오고 살인에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한 실로 대담하고 비상식적인 범죄자이다.
현실에서는 무력한 인간이었으나 인터넷에서는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쪽 일을 많이 해봤으니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지껄이고 다녔다고 한다. 카리스마 킬러 컨셉으로 망상을 현실에서도 적용하려 애쓰던 인물로 체포된 후 며칠 간은 어디 스릴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경찰에 체포돼서도 카리스마를 뿜는 킬러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한심한 인간.
경찰에 검거된 뒤 "짜장면을 시켜 먹자."는 담당 경찰관의 말에 "면을 잘 안 먹으니 볶음밥을 시켜달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담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살인범이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형까지 구형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전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이기에, 형사가 몇번씩이나 "너 지금 살인혐의로 입건된 거야!!"라고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못가 며칠이 지난 뒤부터는 정신을 차렸는지 점점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어 있던 현실감각이 깨어나기라도 했는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사 도중에도 자신이 받을 형량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다른 연관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등 비굴하고 처량한 태도로 변했다고 한다.
결국, 검찰에서는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다. 그냥 살인도 아니라 다수가 계획하여 집단으로 벌인 계획살인이었으며, 또한 다른 범인들이 소년범으로 취급된 것과 달리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벗어난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최후 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지만, 동시에 "박모 씨 때문에 이모 군과 홍모 양, 그리고 나까지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받아야 한다." 고 했다.
최종적으로 살인 등으로 이모 군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원래는 무기징역이 마땅하고 법적으로도 선고에 문제가 없었으나, 주범이 아닌 그가 주범인 이모 군보다 더 엄한 처벌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명백하게 죄과에 비해 낮은 형량이다. 무기징역이 아닌 유기징역은 형량의 1/3을 채우면 무조건 가석방 대상이 된다. 무기징역은 20년 이상 복역해야만 가석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차이다. 2019년 시점으로 형기의 1/3을 채웠으므로 가석방 대상이 되어 있다.
홍모 양
통칭 '꼬마신부'(또는 '꼬마'). 당시 15세. 이모 군의 여자친구로 알려져 있다.
범행 현장까지 동행했으나 살해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범행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다음 이모 군과 찜질방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검거되어 피의자 혐의를 받았다. 일시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직접적 연관점이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홍모 양의 사전 구속영장은 반려되었으나, 나중에 현장에서 망을 보고 행인들이 현장 가까이 오는 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홍모 양 또한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홍모 양의 과거 코스프레 경력 때문에 다른 코스프레에 대한 불신감과 혐오감을 올리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다. 공개된 사진에 같이 찍힌 옛 코스어 동료까지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상황. 박모 씨와 마찬가지로 사령카페에 깊이 심취해 있어, "인간들이 사령을 안 좋게 생각하여 사령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홍모 양 측의 변호인은 "사건 당일 범인들이 김모 씨를 혼내는 정도로만 알았고, 살인을 공모한 것은 아니다.", "홍모 양이 살해현장에서 망을 보며 행인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것도, 행인들이 사건현장을 발견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홍모 양은 이모 군과 윤모 군이 숨진 김모 씨를 살해현장 옆 풀숲으로 옮기는 것을 20여 m 떨어진 지점에서 보고 있었고, 이것이 사체를 유기하는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여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피해자가 살해된 장소로부터 고작 20m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 끔찍한 소동을 보면서 단순히 '혼내는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변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홍모 양은 15년 형을 구형받았다. 살해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공모에 가담하고 범행현장을 지켜보며 망을 보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최후진술에서 "피해자와 잘 지낸 기억도 있는데 말리지 못해 피해자와 유가족께 죄송하다."며 "우리 부모님께도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잘 알고 있고 너무 죄송하다."고 발언했다.
최종적으로는 청소년이고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는 않은 점이 고려되어 앞의 2명(이모 군, 윤모 씨)보다는 처벌을 감하여 단기 7년, 장기 12년이 선고되었다. 여자 수형수는 대부분 모범수로 조신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인간쓰레기도 이미 단기 7년으로 징역을 마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에 언론 매체들에서는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며, 사건 현장에 있던 홍모 양(15)을 김모 씨가 건드려서 남자친구인 이모 군(16)이 질투심에 의해 살인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도하였다.
또한 만난 경로 역시 이들이 온라인상의 음악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만났으며, 같이 합주하던 록밴드라고 소개하였다. 한마디로 록밴드 내에서 여자를 두고 다투다가 발생한 사건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마비노기의 악기 연주 기능을 이용하는 것을 밴드라고 표현한 것인데, 기자들은 이러한 것을 간과한 채 "인터넷에서 만나서 (실제)록밴드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이후에는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심령술에 빠져서 저질렀느니, 잔인한 범행 수법이 심령 의식의 일종이라느니 하면서 별의 별 소설을 써댔다. 어떤 이들은 이 개드립을 보고 한국의 유로니무스 살인사건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또한 "평소 비과학적인 것을 싫어하던 김모 씨는 박모 씨를 사령카페에서 탈퇴시키려 했고, 이 때문에 사령카페 회원들과 크나큰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라고 언급한 기사도 있지만, 실제로 이 항목 밑에 링크되어 있는 피해자가 예전에 쓴 사령카페 리뷰를 보면 오히려 그런 비과학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을 했으나, 카페의 분위기가 워낙에 안 좋았기 때문에 (모든것이 바보짓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박모 씨에게 탈퇴를 권한 걸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개신교 언론들은 오컬트 카페의 회원들이 일으킨 살인임을 보고 경찰의 프로파일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사건의 책임을 오컬트 카페로 돌리며, 더 나아가 반기련 등을 언급하며 반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하는 인터넷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물론 사령카페 자체가 단순히 오컬트 카페가 아닌 악마숭배적 모습이 보이는 탓에 문제가 크다만, 문제는 개신교 언론들이 사령카페 자체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반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게다가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피해자를 포함한 가해자들의 교류 통로가 되었던 문제의 '단톡방'은 처음 사령카페에서도 한참 전에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본 문서 상단에도 서술하였다). 물론 엄밀히 말해 허위는 아니나 과장을 한 것. 한 마디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령, 자살, 안티기독…현실 지배한 '인터넷' 이러한 활동을 악령 숭배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다른 면에서는 기존처럼 문화 매체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사회병리학적인 분석을 통해 가해자들의 정신상태와 성장환경이 잘못이라는 것을 좀더 분석한 기사들이 나오는 중. 한국일보 측에서 프로파일러의 가해자 분석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사령카페는 그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게 된 공간에 지나지 않고, 이런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폭력, 부모의 정서적 방임, 집단괴롭힘 같은 잘못된 사회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도 최근 빈발하고 있는 집단괴롭힘 자살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하는 문제로 보인다.
포탈 등에서 서식하면서 중2병 환자수용소 역할을 하던 사령카페들한테 철퇴가 떨어졌다. 웬만한 대형 카페들은 전부 강제 폐쇄당했고, 소규모로 놀던 카페들도 거의 다 폐쇄 권고를 받았을 정도. 또한 이 사건의 결과로 한국에서는 개그의 소재나 다름없었던 중2병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심각해졌다.카운트라는 범죄자가 저지른 유로니무스 살인사건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10대의 일탈과 블랙 메탈에 대한 인식이 심각해진 것과 비슷하다.
2012년 5월 19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사건과 사령카페를 자세히 분석한 내용을 방송했다. 여기서는 경찰청 프로파일러의 해석에 의거하여, 이번 사건을 학교와 사회의 안전망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방송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학교나 일상 생활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질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가해자들이 지속적인 학대 경험에 노출되었다는 점, 그리고 현실에서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에게 사령카페가 사회적 유대를 이룰 수 있는 탈출구였다고 해석하였다. 현실에서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이루지 못했던 이들에게 사령카페에서 받는 유대감과 동료 사이의 인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전과 한 번 없었던 가해자들이 잔혹하게 범죄를 저지른 동기 또한, 사령카페에서의 인간 관계가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방송에서는 사령카페는 소외된 아이들이 만나게 된 매개체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사령카페가 아닌 그 어느 집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렇게 소외된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기존의 추측성/마녀사냥성 보도들과 차별되는 논리전개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 방송팀 작가가 리그베다 위키를 참조했는지, 리그베다 위키에 나온 서술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자료화면으로 스레딕 오컬판 스레로 추정되는 화면이 나왔다.
2012년 6월 24일 현장추적 싸이렌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었다.
하지만 사령카페나 캐릭터 커뮤니티 등 반사회적 망상에 빠지기 쉬운 중2병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두번이나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논의와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피해자의 블로그 마지막 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방통위의 차단을 당했다가 다시 풀렸다.
또한, 해당 사건이 벌어졌던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에는 CCTV가 추가 설치되었고 야간조명장치 역시 강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순찰도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