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이정(李靖)의 7대손으로 고려 말에 현달한 이순백(李珣白)·이숙백(李淑白)·이승백(李升白) 3형제 대에서 상서공파(尙書公派)·한림공파(翰林公派)·제학공파(提学公派) 로 분파되었다. 1856년 철종 7년 광주 증심사 선당에서 병진대동보(족보)를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상서공 순백, 한림공 숙백, 제학공 승백 삼조(三祖)의 후손을 모두 등재한 광산이씨 유일의 대동보이다. 병진대동보에 의하면 이정(李靖)을 시조로 하고 있다.
광산이씨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순백을 일세(一世)로 한 상서공파이다. 이순백을 一世로 하여 내려 오다가 五世인 이선제(李先齊) 때 이르러 다섯아들(五元으로 불림)때에 이르러 세부적을 분파가 나뉘게 된다.
첫째 아들인 이시원(양심당)의 후손들은 익산파, 낙안파, 광주파로 나뉘게 되고,
둘째 아들인 이찬원(제학공)의 후손은 영광파로 나뉘게 되고,
세째 아들인 이조원(청심당)의 후손들은 능주파, 봉황산파, 강진파, 순천파, 화순파로 나뉘게 되고,
네째 아들인 이한원(세심당)의 후손은 세심당파로 나뉘게 되고,
다섯째 아들인 이형원(성심당)의 후손들은 죽청파, 나주파, 진천 동복파, 진도 동외파, 진도 폐동파, 일곡파 등으로 나뉘게 된다.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의 역모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정여립의 집에서 그당시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순백부터 十世에 해당되며 이선제의 다섯째 아들인 이형원의 후손이다)과 주고 받았던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을 비롯한 천여명의 동인이 죽게되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기축옥사로 기록되고 있다. 심지어 이발의 조상이었던 이선제까지도 직위가 박탈되었음은 물론 동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삼족을 멸하였으니 이발 선생의 82세된 노모와 어린 아들까지도 참형을 받게 되었다. 이사건을 계기로 이발 선생의 친인척까지 죽게 되었으니 이선제의 다섯아들에서 퍼져나간 많은 광산이씨 후손들이 죽게되면서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한편 숙백의 한림공파 중에는 그의 아들 순(順)이 1374년(공민 왕23) 문과에 급하여 헌납(獻納)을 거쳐 풍해 안렴사를 지냈으며, 그의 맏아들 초(椒)는 조선(朝鮮)이 개국한 후 대사성을, 차남 매(枚)는 영광 교도를 거쳐 참판을 역임했다. 회령 판관을 지낸 림(林)의 아들 형제 중 차남 근생(根生)은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세조)이 등극하자 이를 개탄하여 경북 고령군 성산면 고곡동(慶北高靈郡星山面高谷洞)으로 은거하여 학문에 진력하다가 생(生)을 마치니 그후로 영남파조(嶺南派祖)가 되었다.
한림공파는 장성파, 봉연파, 영남파, 칠곡파, 성주파, 단사동파, 합천파 등으로 이어졌고 승백의 제학공파는 개성파로 이어졌다.
· 상서공파(尙書公派)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동(東) |
환(煥) |
주(周) |
호(鎬) |
승(承) |
휴(休) |
병(炳) |
교(敎) |
진(鎭) |
원(源)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상(相) |
혁(爀) |
재(在) |
현(鉉) |
해(海) |
표(杓) |
현(炫) |
배(培) |
종(鍾) |
제(濟)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8세 |
50세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락(樂) |
욱(煜) |
재(載) |
석(錫) |
호(浩) |
지(至) |
· 한림공파(翰林公派)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달(達) |
석(錫) |
원(源) |
수(秀) |
희(熙) |
식(埴) |
종(鐘) |
순(淳) |
영(榮) |
렬(烈)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재(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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