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14년(755년) 허황후(許皇后)의 23세손인 아찬(阿飡ㆍ신라 17관등 중 6번째 관등) 허기(許奇)가 신라 사신으로 당(唐)나라에 갔을 때 그해 11月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생하여 현종(玄宗)이 756년 촉(蜀)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그때 허기(許奇)는 위험을 무릅쓰고 현종을 호종(扈從)하였으며, 757년 난이 평정되어 현종이 도성으로 돌아와서 이를 가상히 여겨 시서(詩書)와 황제의 성(姓)인 이씨(李氏)를 사성(賜姓)하였다. 758年 허기(許奇)가 신라로 환국하자 신라 경덕왕은 그 공을 기려 소성백(邵城伯)의 작위(爵位)와 식읍(食邑) 1,500호를 봉하여 세습케 하였으며, 이로써 허씨(許氏)에서 이씨(李氏)가 되었으므로 인천 이씨 문중에서는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得姓祖)라 한다. 득성조(得姓祖) 이허기(李許奇)의 10세손으로 고려 현종(顯宗)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이허겸(李許謙)에게는 2남 1녀가 있었는데 그의 딸이 김은부(金殷傅)에게 시집가서 세 딸을 낳았고, 이 세 딸이 모두 현종(顯宗)의 비(妃)가 되었다. 인천 이씨는 허(許)씨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 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 이씨(仁州 李氏)로도 불렸다.
경원 이씨(慶源 李氏) → 인주 이씨(仁州 李氏) → 인천 이씨(仁川 李氏)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상(祥) ○희(禧) |
병(炳)○ |
○희(熙) ○욱(煜) |
재(在)○ |
○하(夏) ○은(殷)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현(鉉)○ |
○수(洙) ○태(泰) |
동(東)○ |
○연(然) ○휴(烋) |
중(重)○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진(鎭) ○수(銖) |
호(浩)○ |
○식(植) ○주(柱) |
찬(燦)○ |
○균(均) ○규(圭)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광(光)○ |
○호(鎬) ○옥(鈺) |
연(淵)○ |
○림(林) ○동(棟) |
현(炫)○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재(宰) ○종(宗) |
종(鍾)○ |
○락(洛) ○원(源) |
수(秀)○ |
○묵(默) ○훈(勳) |
56세 |
57세 |
58세 |
59세 |
60세 |
치(致)○ |
○탁(鐸) ○일(鎰) |
홍(洪)○ |
○식(植) ○표(杓) |
희(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