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이씨(眞寶李氏)의 시조 이석(李碩)은 고려 충렬왕 때 진보현리(眞寶縣吏)로 있다가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따르면 그의 맏아들 이자수(李子脩)가 1330년(충혜왕(忠惠王) 즉위년) 문과에 급제하여 1362년(공민왕 11)에 봉상대부(奉常大夫) 지춘주사(知春州事)로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여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지면서 시조 이석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밀직사(密直司)에 증직(贈職)되었다고 한다.
《임자보(壬子譜)》 유사(遺事)에 실려 있는 〈시조 증봉익대부 밀직사부군유적고증(始祖贈奉翊大夫密直司府君遺蹟考證)〉을 보면 이석(李碩)의 아버지 호장(戶長) 이영찬(李英贊)과 할아버지 호장 이송주(李松柱)까지의 세계를 송안군의 정안(政案)에 의해 알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세계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문묘와 종묘에 동시에 배향된 성리학자이자 재상 퇴계 이황을 배출했다.
진보 이씨는 《임자보(壬子譜)》에서 5세조를 파조로 하여 6개파로 나뉜다.
14세 |
15세 |
16세 |
17세 |
18세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수(守) |
구(龜) |
순(淳) |
휘(彙) |
만(晩) |
중(中) |
호(鎬) |
원(源) |
동(東) |
희(熙) |
24세 |
2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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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奎) |
석(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