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이씨(陜川 李氏)의 시조 이개(李開)는 신라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 알평(謁平)의 39세 후손이라고 한다.
《임술보(壬戌譜)》의 중시조사적(中始祖事蹟)에 따르면 유구국(琉球國)의 20만 대군이 신라에 침입했을 때, 단독으로 적장을 만나 담판을 지어 물리쳤다고 한다. 이 공으로 강양군(江陽君)에 봉해졌다고 하는데 강양은 합천(陜川)의 옛 이름이다. 그러나 신라 말에 유구국이 침입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는 후대에 날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려가 건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태조의 부름을 거역하여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합천호장(陜川戶長)을 지냈다.
《문충공사적기(文忠公事蹟記)》에는 그가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문인으로 유학(유학)의 진흥에 힘써 그 공으로 강양군에 봉해졌으며 박경엽(朴敬燁)의 난을 토평하고, 다시 문학(文學)을 진흥시켜 중국에 버금가게 하였다고 하였다.
이개가 합천호장을 지냈고 그곳에서 죽은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합천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하고 있다.
합천 이씨는 경주 이씨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15개 파로 대별되는데, 교리공파(校理公派)ㆍ목사공파(牧使公派)ㆍ병사공파(兵使公派)ㆍ부사공파(府使公派)ㆍ사간공파(司諫公派)ㆍ사인공파(舍人公派)ㆍ상서공파(尙書公派)ㆍ생원공파(生員公派)ㆍ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ㆍ전서공파(典書公派)ㆍ제학공파(提學公派)ㆍ참지공량실파(參知公良實派)ㆍ참지공량진파(參知公良眞派)ㆍ첨사공파(詹事公派)ㆍ판사공파(判事公派)로 분파되었다. 그 중에서도 전서공파(典書公派)가 가장 번창하였으며, 그밖에 목사공파(牧使公派)ㆍ참지공파(參知公派)ㆍ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 등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호(鎬) |
순(淳) |
근(根) |
렬(烈) |
재(在) |
석(錫) |
태(泰) |
상(相) |
희(熙) |
배(培) |
45세 |
4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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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鎭) |
수(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