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군정(尹君正)은 고려 고종과 원종 2대를 섬겨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수사공(守司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판공부사(判工部事)에 이르렀다. 1257년(고종 44) 4월 원주(原州)에서 안열(安悅) 등이 고성(古城)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으로서 낭장(郎將) 권찬(權贊)과 함께 흥원창(興元倉)에서 적을 크게 파하고 난을 진정시켰다. 그 공으로 우복야(右僕射)와 수사정(守司正)에 까지 올랐으며, 충간(忠間)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은 고려 충숙왕 때 대언(代言)이 되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탁월한 외교수단으로 행성(行省)의 설치를 중지시켰다. 그 공으로 충근절의동덕찬화보정공신(忠勤節義同德贊化保定功臣)에 책록되고 관직이 벽상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도첨의사(都僉議司) 좌정승(左政丞)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에 올랐으며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다.
4세에서 크게 문영공파와 충간공파로 갈라지고 다시 문영공파는 8세에 이르러 4개분파로 나뉘고 충간공파는 13세에 이르러 16개 분파로 나뉜다.
[ 항렬표(行列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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