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유씨(務安兪氏)의 시조(始祖) 유순직(兪舜稷)은 고려(高麗)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검교소부소감(檢校小府少監)을 역임하고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장사(長沙)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그 후 증손(曾孫) 천우(千遇)가 고종(高宗)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원종조(元宗朝)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를 지낼 때 김인준(金仁俊) 등과 함께 최 의(崔 誼)를 주살(誅殺)하는데 공을 세웠다. 후에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오르고 충렬왕(忠烈王) 때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으며 사후(死後)에 무안부원군(務安府院君)에 추봉(追封)됨으로서 후손들이 이적(移籍)하여 본관(本貫)을 무안(務安)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천우(千遇)의 아들 영원(永元)은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에 올라 이부상서(吏部尙書)와 좌복야(左僕射)․ 전공시랑(典工侍郞)등을 지냈으며, 손자 윤수(允粹)도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역임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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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濟) |
식(植) |
병(炳) |
조(朝) |
선(善) |
수(洙) |
영(榮) |
희(熙) |
지(志) |
용(鎔) |
3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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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淳) |
채(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