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 대각간시중(大角干侍中)을 지낸 위창주(魏菖珠)를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위창주의 5세손 위계정(魏繼廷)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보궐지제고(左補闕知制誥)를 거쳐 선종 때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고, 숙종 초에 예부와 이부의 상서가 되어서도 결백하고 지조 있는 관료 생활을 계속하여 칭송을 받았다. 이어 판한림원사(判翰林院事)를 거쳐 1101년(숙종 6)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냈으며, 1104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태자소사(太子少師)를 겸하고, 1105년(예종 1년)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1]
위창주 15세손 위덕룡(魏悳龍)은 위자온(魏自溫)ㆍ위자량(魏自良)ㆍ위자공(魏自恭)ㆍ위자검(魏自儉) 네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로부터 위씨의 상계분파(上系分派)가 시작되었다. 위자온(魏自溫)은 능주파(綾州派)로, 위자량(魏自良)은 관산파(冠山派)ㆍ행원파(杏園派)ㆍ여천파(麗川派)로, 위자공(魏自恭)은 사월파(沙月派)ㆍ관북파(關北派)로 분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자검(魏自儉)은 후손이 끊겼다.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영(榮)○ | ○(조)祚 | 木(변)○ |
계(啓)○ |
○양(良) ○규(奎) ○철(喆)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火(변)○ |
성(聖)○ |
○복(復) |
金(변)○ |
태(泰)○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현(賢) |
山(변)○ |
○필(必) |
○기(基) |
토(土)○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영(永)○ |
○창(昌) |
水(변)○ |
○보(普) |
○문(文)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
車(변)○ |
인(寅)○ |
○령(齡) |
言(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