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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조 상국진(尙國珍)은 목천호장(木川戶長)을 지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목천상씨갑자대동보(木川尙氏甲子大同譜)』 등에 의하면 그의 선조는 백제 호족으로 왕건(王建)이 고려를 개국할 때 목천(木川) 상왕산(尙王山)에 웅거하면서 여러 차례 백제 재건운동을 벌이자 왕건이 상(象: 코끼리)이라는 축성(畜姓)으로 고치게 하였다. 시조의 묘는 목천 상왕산 아래 간좌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력 10월 3일이다.

상국진의 아들 상득유(尙得儒)가 고려 문종(文宗)조에 최충(崔沖)이 세운 구재(九齋)의 대빙재학사(待聘 齋學士)에 선발되어 향역(鄕役)을 면제받으면서 본래의 상(尙)씨로 환원되었다.

상득유의 아들 상원(尙愿)이 급사(給事)를 지내며 임지(任地)를 따라 임천(林川)으로 옮겨 10대를 세거하였다.

9세손 상영부(尙英孚)는 호군(護軍)을 역임하였고, 충청도 임천(林川)에서 살고 있을 때 가세(家勢)가 풍족하였는데, 채권(債卷)을 불살라 버리고 말하기를, "나의 후손은 반드시 창성할 것이다." 하였다. 이후 10세손 상효충(尙孝忠)이 수군 우후(水軍虞侯)를 역임하고, 11세손 상보(尙甫)는 안기도 찰방(安奇道察訪)을 지냈다.

12세손 상진(尙震)이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49년(명종 4) 우의정이 되고, 1551년(명종 6) 좌의정을 거쳐 1558년(명종 13)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15년 동안 조선의 재상으로 국정을 총괄하였다.[2]

분파

15세손에 이르러 상자산(尙子産)의 후손은 부여파(扶餘派)로, 상자화(尙子華)의 후손은 원주파(原州派)로, 상자천(尙子賤)의 후손은 풍덕파(豊德派)로 각각 분파되었다.

항렬표

부여파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주(周)

계(系)

택(澤)

동(東)

용(容)

치(致)

현(鉉)

수(水)

식(植)

병(炳)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규(圭)

희(羲)
의(義)

종(淙)
철(澈)

주(柱)
 정(挺)

열(烈)
희(熙)

민(珉)
배(培)

용(鏞)
호(鎬)

연(演)
한(漢)

환(桓)
수(秀)

현(炫)
유(惟)

37세

38세

               

재(載)
영(瑛)

진(鎭)
용(鎔)

               

풍덕파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자(子)

첨(詹)

주(周)

창(昌)

택(澤)

동(東)

용(容)

치(致)

현(鉉)

수(水)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식(植)

형(炯)

규(圭)

희(羲)

기(基)

동(東)

희(熙)

기(基)

호(鎬)

영(永)

35세

36세

37세

38세

           

근(根)

영(榮)

균(均)

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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