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배씨(大邱裵氏)는 고려조에 대구(大邱) 지방의 향리(鄕吏)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배정지(裴廷芝)가 현달하자 그의 증조부인 배손적(裵孫迪)이 대호군(大護軍)에 추증되었다.
배손적(裵孫迪)의 아들은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추증된 배인검(裵仁儉)이고, 손자는 민부전서(民部典書)를 지낸 배영(裵瑩)이다.
배영(裵瑩)의 아들 배정지(裴廷芝)의 초명 배공윤(裵公允)이며, 자는 서한(瑞漢), 호는 금헌(琴軒)이다. 고려 원종조에 도지(都知)가 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할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에 별장(別將)으로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따라 원의 반란군 합단적(哈丹賊)을 무찌른 공으로 중랑장(中郎將)에 특진되었다. 충선왕(忠宣王) 때 호군(護軍)이 되었으며, 1318년(충숙왕 5)에 대호군으로서 탐라존무사(耽羅存撫使)가 되어, 탐라(耽羅)의 반란을 토벌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낭장 정승백(鄭承伯)의 딸과 혼인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전라남도 나주의 초동사(草洞祠)에 제향되었다.
배정지의 둘째 아들 배천경(裵天慶)이 1354년(공민왕 3)에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1356년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쳐 지추밀원사에 올랐으며,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에 특차(特差)되었다. 2년 뒤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에 오르고 뒤에 동경윤(東京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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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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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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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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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 [멀티미디어/연예인 모델 사진 화보] - 배씨 연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