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씨대동보(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고대의 전설 속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16세손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이다.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신라 선덕왕 1년) 신라에 건너와 자옥산(紫玉山:지금 경주시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후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 보급에 진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계대(系代)가 불명하여 신라 경명왕(재위 917년 ∼ 924년)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되었다는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었다.
백창직의 증손 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수원군(水原君)에 봉해졌다고 하나 사적이 없고, 그의 9세손 천장(白天藏)이 원(元)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우승상(右丞相)을 지내고 귀국하여 고려 충선왕 때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졌다고 하나 이 역시 사적에 없다. 수성은 수원의 옛 이름이다.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수원 백씨는 개성에서 왔다고 했다. 조선 조 이래 백씨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백효삼(白效參)의 증손인 문신 백인걸(白仁傑)이 있다. 2015년 인구는 354,428명이다. 사적(史籍)으로 볼 때 수원을 본관으로 처음 쓴 사람은 백효삼(白效參)이다. 백효삼은 1427년(세종 9) 친시(親試)에서 과지에 본관을 '수원'으로 기재하였다. 백효삼은 보성현감(甫城縣監)을 지낸 백회(白薈)의 아들로, 임천 백씨 백경신(白景臣)의 아들 진식(眞植)의 후손인 백천장(白天藏)의 현손이다. 조선조에 효삼의 후손들이 잇달아 중앙 관료로 진출하면서 자손들이 번성하여 조선 말에는 백씨 일족 중에서도 대관(大貫)이 되어 1850년대부터 수원으로 본관을 통합하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고려 조에 선산, 대흥, 남포, 직산, 청도 등을 본관으로 번성했던 백씨들이 조선 조 들어 '불사이군'(不事二君)을 들어 출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쇠락한 반면, 조선 창업 무렵 창관한 수원 백씨들은 개국 이래 조정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손이 번성하여 조선 말에 이르러서는 전체 백씨의 다수를 점하게 되었고, 1850년대부터 수원으로 본관을 통합하려는 논의가 전개되었다.
·수원파
16세 |
17세 |
18세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영(榮) |
문(文) |
윤(允) |
민(民) |
시(時) |
화(華) |
용(龍) |
사(師) |
동(東) |
진(鎭)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수(洙) |
락(樂) |
남(南) |
균(均) |
현(鉉) |
승(承) |
종(鍾) |
열(烈) |
규(圭) |
선(善)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순(淳) |
식(植) |
환(煥) |
수(壽) |
상(尙) |
윤(潤) |
영(榮) |
연(然) |
곤(坤) 진(珍) |
은(銀) 석(錫) |
4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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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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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파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희(熙) |
기(基) |
흠(欽) |
영(永) |
인(寅) |
형(亨) |
선(善) |
종(鍾) |
순(淳) |
계(桂)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열(烈) |
재(在) |
호(鎬) |
홍(洪) |
수(秀) |
찬(燦) |
균(均) |
·대흥파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옥(玉) |
거(居) |
운(運) |
중(重) |
진(鎭) |
순(淳) |
운(雲) |
동(董) |
토(土) |
2020/01/19 - [멀티미디어/연예인 모델 사진 화보] - 수원 백씨 연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