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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예천 권씨(醴泉 權氏)의 유래를 살펴보면 약 700 여년전 고려 충목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예천권씨(醴泉權氏) 원래의 성(姓)은 예천지방 3대 토성(土姓)중 하나인 '흔(昕)'씨 였으며, 흔(昕)'씨 가문의 선대(先代)는 예천지방의 호족으로 대대로 호장을 세습 하였다.

예빈경(禮賓卿)을 역임한 6세 '흔섬(昕暹)'대에 이르러 고려 29대 '충목왕(忠穆王)'이 등극 하였는데, '충목왕'의 이름(名)이 바로 '흔(昕)'이었다. 이에 '국명(國命)'에 의해 '흔(昕)씨'도 성(姓)을 바꿔야만 했다.

이에 '흔섬(昕暹)'은 어머니의 성(性)이자 흔씨 1세, 3세의 처가 성(性)이기도 한 '권(權)'을 새로운 '성(姓)으로 정하여 '권섬(權暹)'이라 하고 본관은 시조의 세거지인 '예천(醴泉)'으로 하였다.

(참고 : 예천권씨 세보 <무진보(戊辰譜)>에 따르면, 시조 권섬(權暹)이 충목왕(忠穆王)의 이름인 흔(昕)을 피하여 외가 성씨인 권씨(權氏)로 개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신종 원년인 고려 명종때에 예천의 흔씨(昕氏)에게 권(權)씨 성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추측하건데 명종 때 권씨 성을 내렸으나, 이후 흔씨로 복귀하였고 다시 충목왕때 개성한 것이며, 그래서 세보에는 흔적신(昕迪臣)을 시조1세로 기록하지 않았나 판단된다)

이후 예천권씨는 관향인 예천에 터를 잡고 누대에 걸쳐 세거해 왔다. 5세 '권선(權善)'대에 이르러 선대(先代)에 드물게 오행,오기,오복,오윤,오상 등5형제를 두었고, 이들 형제가 전부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에서는 '오복문(五福門)'이라 칭하며 모두들 부러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벼슬길에 나서며 모처럼 가문의 번성을 꾀하였으나, 조선 10대 왕인 연산군 시절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예천권씨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많은 자손들이 안동권씨로 흡수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무오사화로 인해 중앙관직 에서는 잠시 멀어졌으나 선비의 기개는 후손들에게 이어져8세 '권문해(權文海)'는 일찍이 퇴계 '이황(李滉)'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다시 '권문(權門)'의 명성을 널리 떨쳤다. 선생이 저술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조선시대 간행된 출판물 중 가장 가치있는 문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예천권씨는 예로부터 자손이 귀해 지금도 그 수가 많지 않으며, 특히 '무오사화(戊午士禍)'를 겪으며 후인들이 안동권씨로 살아가게 된 경우가 많이 있었다. 후에 그 문제에 관하여 심각한 논의가 있었으나 이미 여러 세대를 안동권씨로 살아오던 후손들에게 족보를 수정(?)하라고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2000년도 인구조사에서 총 1,512가구에 4,876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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