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은 비서랑(秘書郞)을 역임하고, 991년(고려 성종 10년)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여진족을 백두산(白頭山)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임명되었으며,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을 1세조로 한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은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간의대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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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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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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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炫) |
용(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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