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모씨세보(咸平牟氏世譜)》에 따르면, 시조 모경(牟慶)은 중국 홍농(弘農) 출신으로, 북송 흠종 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이 되어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이자겸의 모반 음모를 저지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그 후 귀국하여 홍농후(弘農侯)에 봉해졌으나 금나라가 송경(宋京)을 침입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납치해 가자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가 송나라가 패망하자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에서는 그를 후대하여 평장사(平章事)의 벼슬을 내리고 모평군(牟平君)에 봉하였다고 한다. 송 흠종 (재위 1125 ~ 1127) 때 이부상서의 벼슬울 지냈다. 1126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었는데, 때 마침 일어 난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일조하여, 고려 인종이 독살 당할 위기를 모면하고 환궁하게끔 돕는다. 이 공으로 일등공신으로 서훈 된다. 그 바로 후 송으로 귀국하여 홍농후, 즉 홍농 (송의 수도 카이펑 근교, 즉 서울로 치자면 경기도 같은 곳)을 다스리는 제후로 봉해진다. 곧 이어 금 나라가 침공하는 통에 송은 강남으로 도주,임안에서'남송'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금나라가 쳐들어 왔을때 휘종, 흠종 두 황제 부자가 포로로 잡혀 감.
고종은 아버지 휘종과 형 흠종의 귀환을 금과 교섭해야 하는데, 그들이 잡혀가 있는 오국성에 직접 교섭단을 보낼 길이 없었다. 따라서 당시 금과 적국관계가 아닌 고려 쪽 루트를 통해 두 사람 석방 교섭단을 보내기로 하고, 고려에 '길안내'도 부탁하고 겸하여 군사적 협공 가능성도 타진키 위해 (고려에서 공을 세운 바 있던) 모경을 대사마대장군 (지금의 참모총장)으로 진급싴병부 상서 양응성과 묶어 11함께에려로신으로 보낸다.
하지만 고려로서는 공엲금의 과쟁에 끼어 들 필요도 이유도 없으므로 이를 거절하고, 양였음 응성은를 보고하기 위해 송나라로 돌아 가고, 모경은 계속 고려를 설득하기 위해 남는다. 결과적으로는 모경은 자의 임무 달성기패고령 셈파견 실에한 인종은데 아 가느니 눌편 낫다고 설득하고 평장사 벼슬을 내리고 자신의 딸 중 하나며즉 고려의 공주)과 결혼 키고모평와명금의 전남 함을 군대(지 먹고딴식읍으로 하사한다.
모새롱들 모광정(牟光炡)은싵탄을 공급할사를 역임했고, 모광정의 아들 모정린(牟挺麟)은 명종 때 전서를 지냈다. 부자 평장사로 이름을 떨쳤던 모여장(牟汝長)은 모정린의 증손이다. 모여장의 아들 6세손 모호(牟皓)는 삼군도총제 부원수가 되어 원나라 침공 때 전공을 세워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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