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씨(宣氏)들은 옛부터 복호촌(伏虎寸=伏忽,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여러 집안들이 각각 세를 이루어 후손들을 이루다가, 조선중기 각 집안이 족보를 편찬하던 17세기에 들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된 최초의 인물 우의정 선형의 고조부(5대조)인 선윤지(宣允祉)를 시조로 삼고, 선윤지가 낙향한 전라남도 보성을 본향으로 삼았다.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우왕 때 황명(皇明) 문연각학사로 고려에 와서 전라도 관찰사 겸 안렴사(按廉使)로 전라도 해안에 넘나드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으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하였다. 이에 도민들이 한식동(寒食洞)에 생사우(生祠宇)를 세워 선생을 추앙하였고, 1831년(순조31년) 오충사(五忠祠)로 사액되어 후손 형(炯), 거이(居怡), 세강(世綱), 약해(若海)와 함께 오충사에 배향(配享)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임술년에 자헌대부이조판서(資憲大夫吏曹判書) 겸 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知義禁府事五衛都摠管)에 증직되었다.
선용신(宣用臣)을 시조로 하는 조성과 도촌에 사는 선씨는 선용신이 고려 고종 때의 진사(進士)로 여진을 정벌하는 공을 세워 패주군(貝州君)에 봉해졌다고 하며,선중의 호적(보성군호구정장)으로 신원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규(圭) |
종(鍾) |
호(浩) |
동(東) |
무(戊) |
기(己) |
경(庚) |
행(幸) |
임(壬) |
계(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