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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서남부 지역, 강원도 정선, 경기도 안산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그가 죽인 여성 중 확인된 것은 10명.

성장 과정

1969년 충청남도 서천군의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고향 인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정남규나 유영철, 정성현, 온보현같은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강호순의 성장 과정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적인 학대 흔적’이 없다.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이유 없이 체벌한 적이 없으며, 가정형편도 부농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먹고 살 만큼의 전답을 부치고 살았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강호순의 행적 어디에서도 살인마가 될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범행



2004년부터 경기도 남부 일대에서 여성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실종될 때마다 확실한 증거는 없는데 거의 비슷한 지역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나서 '연쇄실종'이라면서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 중 7번째로 군포에서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실종된 여대생을 살인하고 피해자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 덜미가 잡히자 자신의 승용차와 모친의 차량도 불태워 되레 의심을 키우고 말았고,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힐 때만 해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원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여론이 이에 비난하는 분위기로 가자 얼마 후 공개했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 가져와라."라며 결사적으로 항변했지만, CCTV에 비친 얼굴과 희생자에게서 나온 DNA 검식 결과 범인으로 확정, 그간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평상시에는 멀쩡하게 생긴 얼굴이라 결혼도 여러번 했다. 범행 대상 중 6시간 동안 차에 감금되었다 살아난 40대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첫인상은 상당히 순진하고 순박한 축산업자의 느낌이 강해서 속아넘어가기 쉬웠다고 한다.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난 멀쩡하게 일하면서 살긴 힘들고 여자 등 치는게 제일 쉽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동네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심각한 여성 편력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주위에 소개팅을 주선해달라고 조르며 실제로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참고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특성 중 하나가 문란하고 복잡한 이성관계인데 중혼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4번째 아내와 장모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지 얼마 안돼 그들을 방화로 살해, 보험금 4억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강호순의 본질은 숙련된 보험사기범이다.

강호순의 행적을 따라가다가 밝혀진 추가범행으로는 2006년 9월 강원도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여직원 윤모(당시 23세)씨도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식적으로 첫번째 희생자이다.  윤모씨의 오빠는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 중 "강호순을 만나게 된다면 딱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되어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고…."

 



강호순의 가장 유명한 사진.

개를 키우는 농장을 했는데 이 사진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찍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잡아 먹었다고 한다. 거기다 농장에서 키우던 수십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추운 겨울에 먹이도 주지 않고 동사시킨 것도 알려졌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도록 철저하게 위장하며 살아온 듯 하다. 엄인숙과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냥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신뢰를 쌓았다. 동네 주민들 중에는 강호순을 사위나 동생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싹싹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밤이면 강호순은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타고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주로 홀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를 태워준다고 하고, 여성들을 데려가 강간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해왔다. 이때 희생자의 손톱을 가위로 잘라 자신의 혈흔을 남기지 않고 범행에 사용된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소각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내 얼굴 공개되면 자식들은 어쩌라고?" 라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또한 "내 범죄를 책으로 써서 자식들 사는 데 보태겠다."는, 유족들의 정신을 안드로메다 저 멀리로 날려버릴 발언을 연일 일삼고 있다. 하지만 체포 이전 가족들 생활을 보면, 자식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이 적당히 용돈 주고 '너희들이 알아서 사 먹어라' 하는 식으로 신경 끄는 타입이었다. 실상 가족들에게도 별 관심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이를 입증하는 사실이 강호순의 아들인 범인이 2007년 가출, 절도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강호순이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자식이 가출까지 했을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 형제나 자식들도 아버지가 엄청나게 못 된,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강호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유영철보다도 훨씬 과거의 사이코패스들의 구속 후 행동 패턴과 닮아있다. 그런데 전문가 중에는 소시오패스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위에서 언급한 항의와 달리 실제로는 가족을 걱정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 후

2009년 4월 9일 검찰에 의해 사형 구형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4월 22일 수원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이 판결되었다.

그러나 강호순은 사형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것도 변호인과 상의없이 자기가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항소했다. 단, 구속피고인이 변호인과 상의없이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그렇게까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는 사형수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강호순을 구치소에 수감시켜 놓았더니 뻔뻔하게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담당형사 한춘식 경위가 강호순이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서 면회를 가봤더니 완전히 가관이였다. 키가 190cm가 넘는 교도관에게 끌려오는 데도 피식피식 웃으며 오고 담당형사의 질문에 매우 성의없게 대답하는가 하면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의 행동들이 잘했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강호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고 그 중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인물과 동명이인인 사람들이 개명 신청을 하면 허가율이 꽤 높으며, 그런 사유로 허가를 받아낸 사례가 이따금 있었다. 

2014년 4월 근황이 공개되었다. 유영철과는 다르게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조각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고 한다. 취미로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 실력이어서 서울구치소 교도관들도 놀랐다고 한다.. 변희재의 구속초기 변희재가 수용된 바로 옆방에 강호순이 있었는데 교도관이 직접 그에게 변희재의 적응을 도와주라는 부탁을 했다는 일화가 있는것으로 보아 구치소에서 '모범수'로 대우받고 있다고 추정해볼수 있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가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한평생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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