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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이씨 항렬표

 

역사

시조 이능간(李凌幹)은 호(號)가 송헌(松軒)으로, 1320년(충숙왕 7)에 반전별감(盤纏別監)으로서 원나라가 상왕(上王)인 충선왕을 토번지역에 유배시킬 때 호종하였으며, 뒤에 상왕이 훙(薨)하자 재궁(梓宮)을 모시고 고려로 돌아왔다. 1326년(충숙왕 13)에 원나라가 고려에 성(省)을 두려고 하는 일이 일어나자 지밀직사(知密直司)로 원황제에게 중지할 것을 주청하여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그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록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면좌당(免左堂)이라는 액호(額號)를 받았다. 또한 1332년(충혜왕 2)에는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있으면서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되고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이 관향을 영천(寧川)으로 삼았다.

이능간의 손자 이탕휴(李湯休)는 고려 조에 학림학사를 역임하였다. 조선개국을 위한 역성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살던 집을 모두 불살러버리고 자손들을 고향으로 내려보내고 자신은 관과 옷을 찢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그는 자손들에게 절대로 과거를 보지 말 것을 당부했고 이후 그 후손들은 조선조에 한 명도 과거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1] 조선시대 출세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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