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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화국 당시의 의문사 사건이다. 고급 요정 종업원인 정인숙이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의 강변3로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한 총격 암살된 사건이다.

정인숙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인숙은 명지대학교 중퇴 후 선운각이라는 요정에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미혼인 상태로 아들을 한 명 출산하였는데, 그 아들이 당시 정권 최고위층의 자녀라는 소문이 있어서 정치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큰 스캔들이 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수첩에 각계 고위 인사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재벌 회장님 몇명과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이후락주일 대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의 고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박정희 대통령까지 적혀 있었다.

특히 당시 국무총리인 정일권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사에도 정일권의 사진이 실렸다. 심지어 국회에서 신민당 조윤형이 대정부 질문 중 이런 노래가 떠돈다면서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노래를 직접 불렀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 할 것 같으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만 알았을 것을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이 외에 정종욱이 정일권을 찾아가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꽤 오래 돌았다.

20년이 지나 친자확인소송까지 나왔다.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이 미국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후 한국으로 와서 정일권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정인숙의 어머니)에게서 "네 아버지는 정일권이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친자확인소송 중간에 정일권이 사망하면서 소송은 유야무야되고 정성일도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수사 결과와 의문점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 정종욱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있었고, 사건 수사를 성급히 종결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후에 정종욱은 자신이 죽였다는 것은 내외적인 압박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실은 정부기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총을 쏜 것이라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당시 정인숙의 총상을 보면 운전석 혹은 왼쪽 창 밖에서 쏘아야 각도가 나왔는데,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 몸만 돌려서 총을 쏘면, 총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화약흔이 남는다.

당시 수사에서는 정종욱에게서 화약흔이 발견되었다고 범인의 증거로 지목했지만, 정인숙의 화약흔은 언급도 없었다.

그리고 정인숙은 일개 호스티스라고 알려졌지만 경악스럽게도 정인숙은 1960년대 후반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그림의 떡인 해외여행까지 다녀올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유학목적이나 해외취업, 출장외에는 일부 고위층만 해외여행이 가능했으며, 해외출장을 위한 여권을 발행할 때에도 조금 발행했다고 한다.

 해외여행이 대중화 된 것은 해외여행완전자유화가 이루워진 1989년부터였다.

이 시기 정부 고관들도 단수여권으로만 해외여행이 가능했으나 정인숙은 당시로서는 희귀한 복수여권으로 여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1969년 일본을 여행하러 갔으며 놀랍게도 야쿠자들이 경호를 맡았다고 하니 말 다했다.

온갖 소문과 음모론이 나올 법했다.

미디어에서


1992년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른다>라는 영화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정인숙에 대해 다뤘다.


배우 강리나가 정인숙 역을 맡았는데 일본 촬영 당시 야쿠자들이 알아서 공짜로 보디가드를 맡았다고 한다.

예전에 진짜로 정인숙을 호위하던 야쿠자들이 간부가 되어서 정인숙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부하들을 보내 무상봉사 해줬다고 한다.

당시 제작진이 조심스럽게 정인숙에 대하여 질문하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엄청난 거물급 귀부인 정도로 기억한다는 대답까지 했다고 한다.

다만 영화는 비평이나 흥행은 쫄딱 망해서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감독이 90년대 유명 비디오 영화 젖소부인 바람났네를 감독한 김인수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의 하미우가 정인숙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로 추정된다.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당시 신인 탤런트였던 조미령이 정인숙 역을 맡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작품이 조미령의 사실상 데뷔작이라는 것, 오빠를 핍박하고, 심지어 정일권이나 박종규마저도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 가지고 노는 것으로 나온다. 

육영수는 정인숙의 아이의 아버지가 박정희 라는 세간의 소문을 듣고 박정희를 추궁하지만, 박정희는 정인숙과는 관련이 없었고,모 정치인이 박정희한테 무릎 꿇고 사죄하며 사표를 제출하자, 박정희는 공과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며 면박을 주곤 사표를 반려한다.

정종욱의 해명

한편 정종욱은 1989년 출소한 다음 자신은 정인숙을 죽이지 않았고 실은 고위층이 정인숙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였다.

2010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방영하였는데, 사건 검증 결과 직접 차량 안에서 총격을 가하지 않고도 정인숙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사건을 재조사한 감식 전문가는 정종욱의 허벅지에 남은 총상도 타인의 개입으로 생겼을 정황이 충분함을 주장했다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미 오래전인 1990년대 문성근이 진행할 때에도 다룬 바 있었다.

여기선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이 커서 인터뷰하며 얼굴을 보였는데 정성일도 오빠 정종욱이 죽였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배후설을 주장했다.

정종욱이 범인이라는 주장

월간조선 1993년 5월호에서는 정종욱이 범인이 맞다는 기사를 냈다.

앞뒤 안 맞는 정종욱의 항변

 

그것은 정인숙사건이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순수한 형사사건의 성격이며, 범행여부도 사건 자체의 울타리 안에서 판가름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당시 사건 현장의 정황과 남겨진 증거물, 진술 내용이 결국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판대 위에 정종욱 씨가 최근 자신이 결백하다고 한 진술내용을 올려놓아보자.

(1) 범인: 그는 사건 발생 직후 40대 괴한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흉기는 칼빈이라고 했다가 권총으로 번복했다. 출소한지 2년 뒤인 91년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범인은 두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얼굴에 흉터가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못박았다. 또 같은 해 모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자신의 수기에서는 신장 1m75cm 가량의 20대 남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93년 4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공포에 사로잡혀 앞만 바라보고 운전했기 때문에 범인을 본적이 없다고 다시 부인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어온 셈이다.

기타

정치권의 실세와 엮인 미제사건이니만큼 음모론도 다양했고 온갖 도시전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정인숙이 희대의 명기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인숙의 질을 보관하고 있다'는 도시전설이 현재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인숙의 시신을 국과수에서 부검한 것은 사실이나 성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일제강점기 당시 여러 남자의 의문사와 관련된 기생 명월의 성기를 보관하고 있던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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