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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양주시 진접읍 S아파트에서 벌어진 의문의 밀실 살인사건. 침입과 탈출 방법조차 전혀 알 수 없는 희대의 미제 사건이다. 심지어 용의자조차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사건 무렵 지어진 지 1년도 안 됐던 경기 남양주시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는 보안이 철저했다. 외부차량은 차단기를 통과해야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걸어서 단지까지 들어왔다 해도 아파트 동 내부로 들어가려면 출입카드나 비밀번호 입력도 필수다. 집 현관에는 도어록이 있고, 아파트 곳곳엔 CCTV도 꼼꼼히 설치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A동 14층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경로당을 가려던 노인이 집 안에서 살해됐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범인이 현장에 들어오고 나간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2010년 11월 17일 오전 8시쯤 피해자 이씨 할머니(69세)는 서울에 사는 지인과 주식 투자, 근황 등 사는 얘기를 나눈 뒤 18분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이 씨는 외출복을 차려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골프를 치러 집을 나섰다가 밤 11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 남편 박씨(73)는 안방 침대에서 흉기에 얼굴과 목을 10차례나 찔려 숨진 부인의 처참한 시신을 발견했다. 결정적인 사인은 목 경동맥에 입은 상처. 피해자는 날카로운 흉기를 든 범인과 사투를 벌여 양손에 방어흔이 11군데나 남아있었다. 

부검 결과 사망추정시간은 그날 오전으로 분석됐다. 오전 8시 지인과의 통화 이후부터 낮 사이였다. 늦은 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범인이 사용한 흉기를 피해자의 집에서 사용하던 부엌칼로 확인했다. 집 안에 범인이 남긴 발자국은 이 집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슬리퍼 자국이었다. 

 

슬리퍼는 발바닥에 혈흔이 묻은 채 원래 있던 화장실에 놓여 있었다. 범인은 화장실 슬리퍼를 신고 안방에서 범행 후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피해자의 피가 묻은 자신의 손 등을 씻고 슬리퍼를 벗어두었다고 추정됐다.

수사

조사 결과 노부부는 십수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던 부유한 부부였지만, 누구에게 원한을 산 일이 없었다.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로 보이지도 않았다. 범인이 작은방 장롱을 뒤진 흔적이 있었지만 사라진 물건은 없었고, 오히려 고가의 명품시계가 침대 위에 고스란히 남겨져 강도 사건을 연출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성범죄도 아니었다. 현관과 창문도 강제 침입 흔적이 없었다. 피해자가 직접 문을 열어줬을 가능성이 커 경찰은 일단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범인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 없었다. 입주가 시작된 지 1년도 채 안 된 아파트여서 CCTV도 최신형이었던 만큼 영상자료 등으로 아파트를 드나든 사람들을 일일이 대조하면 용의자 확인은 시간문제라고 경찰은 확신했다. 범인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보였다.

연기처럼 사라진 범인

그러나 경찰의 기대와 달리 사건해결의 실마리는 좀체 나오지 않았다. 수사관들의 입에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집으로 들어가려면 현관 도어록에 출입카드를 대거나 비밀번호를 직접 눌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한다. 피해자의 집에는 최신 보안장치 ‘월패드’가 달려 손님이 초인종을 누르면 바깥 카메라에 상대방의 모습이 자동으로 찍혔다. 하지만 사건 당일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없었다. 카드나 비밀번호를 사용할 때 자동으로 저장되는 로그 기록을 삭제한 흔적도 없었다. 혹시 범인이 집 안에 미리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어 사건 일주일 전 CCTV까지 뒤졌지만 의심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사건을 맡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장기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 관계자는 “사건 당일 현관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노크를 한 뒤 피해자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집으로 들어갔다는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아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A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 역시 입주민은 출입카드나 비밀번호를 이용해야 하고, 외부인은 출입하려는 호수에 직접 연락해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하지만 피해자의 집 호수를 누른 외부인이 없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같은 동 주민이거나 다른 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속였다고 가정도 해봤다. 그러나 사건 당일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A동 출입구, 엘리베이터 내부, 1층 엘리베이터 앞 CCTV 등에 찍힌 188명의 당일 행적을 이 잡듯이 뒤졌어도 범인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계단을 이용했더라도 1층 엘리베이터 앞 CCTV에는 모습이 찍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역시 특이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수사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뒤졌는데도 흔적이 없으니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범인이 아직 입주가 안 된 빈 집 창문으로 침입해 계단을 이용했거나, 15층 아파트 옥상에서부터 내려왔다는 가정도 해봤으나, 이러한 방식으로 침입한 것도 아니라고 결론났다. 미입주 세대가 있던 2, 3층 집에는 사건 당일 출입한 사람이 없었다. 옥상에서 14층으로 내려간 흔적도 나오지 않았고, 1~15층 계단 전체에서 실시한 혈액반응에서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피해자 손톱 등에서 범인의 유전자정보(DNA)는 검출되지 않았지만, 집안에 있던 물컵 등 식기에서 6명 것으로 보이는 DNA 일부가 발견되기도 하고 신발장 거울에서는 지문도 나왔다. 그러나 지문은 1년여 전 이사할 때 일했던 이삿짐센터 직원 것으로 확인됐고, 6명의 DNA 정보 대조 결과 용의자는 없었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로 추측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화장실과 부엌을 들렀다. 피해자가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데에 출입할 정도라면 피해자와 익숙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 피해자의 양손에서 방어흔이 11개나 발견됐으므로 범인이 노약자이거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 범인이 CCTV에 찍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아파트의 구조를 잘 아는 인물이다. 혹은 CCTV를 찍지 않는 시간대를 알거나... 만일 CCTV를 피해서 침입하고 탈출했다면, 이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인물이거나 주민이거나 혹은 그 아파트를 자주 출입하던 배달, 용역업체 직원일 수도 있다.
  •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을 정황이 높으며, 범행 전에 장기간에 걸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가 재산이 많고, 작은방의 장롱을 뒤진 흔적이 있으며 개인적인 원한을 산 일이 없으므로 강도의 우발적 살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사라진 물건은 없었으므로 단순히 강도의 우발적 살인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피해자 집 현관의 출입카드, 비밀번호를 이용하거나 초인종을 누른 기록도 없고 내부 CCTV나 1층 CCTV 모두에도 범인의 출입 영상이 없고 A동 입구에도 출입카드, 비밀번호, 호출 기록이 전혀 없는 등 우발적이라고 하기에는 범행이 지나치게 치밀했다. 

그러나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비록 범행도구로 집 안에 있던 부엌칼을 사용하고 범행 당시 화장실 슬리퍼를 신은 뒤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 등 집안 내부를 잘 알고 있으며 창문이나 현관에 그 어떤 강제침입의 흔적이 없어 아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줬을 가능성이 있지만, 피해자 명의 보험 가입이나 재산 다툼이 없는 것은 물론 사건 당일 가족의 알리바이도 모두 성립하였다. 아파트 CCTV에는 남편이 이날 오전에 나갔다 밤에 들어온 화면이 찍혔고 휴대폰 사용 내역에서도 이동 경로가 확인됐다. 골프를 친 뒤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일행의 증언 등도 나왔다.

마지막 남은 것은 가족 이외 면식범일 가능성인데 A동에 입주해 있던 내부인 48세대 모두 신발장, 세면장은 물론 의류까지 혈액반응 검사를 하는 등 철저한 조사를 하였는데도 특이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내부인 중 피해자와 아파트 옥상에서 고추를 말리는 이유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는 이웃이 주목을 받아 집중 조사를 받기는 했다. 경찰은 집 거실에 깔린 카펫을 긴급 압수하고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 살펴봤지만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그리고 청부 살인의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그 어떤 외부인의 출입 흔적도 없었다. 게다가 청부업자 같이 초면인 사람에게 피해자가 스스로 문을 열어 줬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경찰 또한 CCTV 영상을 대조해도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자 A동 주민 모두의 행적을 확인했고, 사건 당일 단지 출입차량 운전자 모두를 살펴봤지만 그 어떤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하실에 몰래 숨어 살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터무니없는 괴담까지 돌았을 정도다. 물론 지하실을 검사한 결과 그랬을 가능성 역시 제로임이 밝혀졌다.

이후

결국 이 사건은 5년에 걸친 노력을 비웃듯 2016년 1월 미제 사건으로 종결됐다. 2017년 6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이 사건의 제보자를 찾는다고 나서며 사건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지만, 1년이 넘어서도 소식이 없다. 사실 2016년 2월에도 제보방송을 내보냈는데 방영되지 않고 2017년에도 제보를 받으니, 방영할 의지는 있지만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설사 제보가 들어왔더라도 유의미한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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