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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죽산 안씨(竹山 安氏)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안원형(安元衡) 고려 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고도 하고, 중대광(重大匡) 광산군(光山君)이라는 기록도 있다.

  • 시조 안원형(安元衡)의 아들 안면(安勉)은 이색(李穡)과 함께 김광재(金光載)의 문하에서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사마(생원시)에 합격하여 1367년(공민왕 16)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정언(正言)으로 있을때 신돈(辛旽)의 부정을 문제 삼았다가 파직 당한 뒤로는 주로 전라도 광주지역에 머물며 전원생활을 즐긴 것으로 보이며, 조선이 개국한 뒤 통훈대부(通訓大夫) 광주교관(光州敎官)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큰아들 안노생(安魯生)은 1376년(우왕2)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직하고 결백한 성품을 인정받아 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이방원(李芳遠)에게 피살될 때 그 일파로 몰려 파직된 후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로 유배되었다. 조선이 개국하고 1399년(정종 1)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다시 출사하여 1400년(정종 2)에는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으로 중용된 후 경상도안렴사·진주목사·예조참의·이조참의·경기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 후손들은 현재 경기도 파주, 광주광역시 오치동·매월동, 함평 나산·월야, 무안, 전라북도 진안·고창, 경상북도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이재공파 문중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아들 안정생(安挺生)은 세종 때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냈다고 한다. 그 후손들은 현재 전라남도 장흥·보성·강진·화순·순천, 경기도 파주·양주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제학공파 문중을 형성하고 있다.

 

  • 그 외 대표적인 인물은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안복초(安復初), 형제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의금부도사를 지내다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된 후 개성부경력·호조참의·호조참판·충청도관찰사·내금위장을 지냈던 안철손(安哲孫)과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로 《문종실록(文宗實錄)》편찬 때 편수기사관(編修記事官)을 지냈고 좌익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던 안신손(安信孫) 형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순국한 안민(安民), 1507년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녹훈되어 청안‧진안‧예안 세 고을의 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안삼안(安三安)’이라 불렸던 안범(安範),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을 지낸 안수륜(安秀崙), 1522년 과거에 아원(亞元)으로 급제하여 우아한 문장과 재행(才行)으로 당세에 으뜸이었던 안수잠(安秀岑), 이황(李滉)과 동년(同年)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냈고 문장(文章)이 뛰어났던 안충달(安忠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나주목사·남원부사를 지내고 물러나와 ‘호남삼고(湖南三高)’로 불렸던 안축(安舳),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던 안극지(安克智), 병법에도 능해 정유재란 중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도왔던 안중묵(安重默),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평생 동안 절의(節義)를 실천해서 보성 죽산안씨의 위상을 한껏 높인 문강공(文康公) 안방준(安邦俊), 병자호란에 남한산성까지 호종했던 안유신(安由愼), 1680년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1등에 녹훈된 안음(安崟),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지낸 안여기(安汝器), 송시열(宋時烈)과 함께했던 이병재(理病齋) 안여해(安汝諧), 유의(儒醫)로 추천받을 정도로 의술에 뛰어났고 동복현감을 지낸 안수상(安壽相), 향약(鄕約)과 의고(義庫)로 빈민을 구제하고 학재(學齋)를 지어 인재를 가르쳤던 안후상(安後相), 시가(詩歌)에 뛰어났던 한설당(閒說堂) 안창후(安昌後), 사간원정언·장령·사헌부지평을 지내면서 서슴없이 바른말 했던 무은재(無隱齋) 안치택(安致宅), 뛰어난 문장(文章)으로 예조좌랑을 지낸 안치방(安致邦), 1795년 79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안형직(安衡稷), 정약용(丁若鏞)이 <기변(幾辨)>을 읽고 “그 정밀하고 명석함이 사람을 감복케 하였다”고 했던 서운헌(棲雲軒) 안호(安浩), 송매정(松梅亭)의 주인으로 목미암(木美庵)에서 향촌교육에 힘을 쏟았던 안수록(安壽祿), 한말·일제시대에 도학(道學)을 이념으로 삼아 교육활동에 헌신했던 도학자 회봉(晦峯) 안규용(安圭容),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 때 나라위해 목숨 바친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安圭洪)·유격대장 안택환(安宅煥)·군량담당 안규창(安圭昌), 1919년 서울 파고다공원 3.1독립만세운동의 안규용(安圭瑢), 1919년 4월 낙안과 벌교장터에서 '낙안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안규삼(安圭三)·안규진(安圭晉)·안덕환(安德煥)·안상규(安尙圭), 1924년 사재를 정리하여 상해로 망명·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던 독립운동가 안후덕(安厚德),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안종변(安鍾卞), 1950년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 480명을 풀어줬던 ‘한국판 쉰들러’ 안종삼(安鍾三), 1971년 월남전에서 육군대령으로 순국한 안도열(安道烈) 등이다.

항렬표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규(圭) 기(基)

종(鍾) 용(鎔)

순(淳) 태(泰)

병(秉) 주(柱)

섭(燮) 열(烈)

재(在) 교(敎)

진(鎭) 현(鉉)

영(泳) 식(湜)

래(來) 영(榮)

찬(燦) 형(炯)

31세

32세

33세

34세

           

철(喆) 배(培)

탁(鐸) 수(銖)

락(洛) 호(浩)

동(東) 병(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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