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손씨(慶州 孫氏)는 신라 건국 초기인 서기 32년(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사로국 6촌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가 손씨로 사성(賜姓)받은 것이 시초이다. 신라 42대 흥덕왕(興德王 826-835) 때 석종고사(石鍾古事)의 주인공인 국효 손순(孫順)을 중조로 하고 경주(慶州), 밀양(密陽), 평해(平海), 세파로 갈렸다. 손순(孫順)의 손자 손익원(孫翼洹)도 월성군에 봉군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경주로 하게 되었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세계가 실존하지 않고 고려말에 가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손경원(孫敬源)을 1세 조상으로 하였다.
경주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다.
10세 |
11세 |
12세 |
1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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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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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18세 |
19세 |
종(宗) |
(金)변 |
여(汝) |
시(是) |
걸(杰) |
구(九) |
성(星) |
종(鍾) |
영(永) |
수(秀)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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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晋) |
익(翼) |
호(鎬) |
락(洛) |
동(東) |
훈(薰) |
효(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