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선(金鐥)은 1981년 신유보(辛酉譜)때 후손들이 소원(遡源) 시켰는데, 그는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 후 맞아들인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의 아들로 고려조에 언양군(彦陽君)에 책봉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족보인 1767년 정해보(丁亥譜)에는 시조를 고려 신호위(神虎衛) 별장 동정(同正 別將) 김수(金壽)라 하면서, 그의 선계는 소목이 명확하지 않아 밝힐수 없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도 경순왕의 후손 김수(金壽)가 일파를 형성하였다고 하였다.
김수의 증손 김취려(金就礪)는 거란을 물리친 공으로 수태위 중서시랑 평장사 판병부사 언양군(守太尉中書侍郎平章事判吏部事彦陽君)에 봉해져 사실상 언양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와서 김선(金鐥)을 소원(遡源: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감)시켜 시조로 삼았다.
1981년 신유보(辛酉譜)때 후손들이 선계를 김선(金鐥)-김진(金進)-김정보(金精寶)-김경숙(金鏡淑)-김수(金壽)로 이어지는 소목을 밝히고, 시조를 경순왕의 아들 김선(金鐥)으로 소원(遡源) 시켰다.
시조 김선(金鐥)은 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의 7자라 한다. 이후 경순왕의 8자들 이름이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등재되기 시작하였는데,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 이름을 개명(改名)하고 시호를 작호(作號)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였다. 또한 김선를 비롯한 《김은열 묘지명》에 등장하는 경순왕의 8자들 이름은 《고려사》 등의 정사는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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