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품언(金稟言)은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현종때 거란군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亂功臣)에 책록되고, 이후 태자소보(太子少保)를 역임하고 수성군(隨城君)에 봉해졌다. 수성은 수원(水原)의 옛 명칭이라 한다. 그의 아버지는 김해 김씨 시조 봉어(奉御) 김염(金濂)이라 한다.
일설에는 시조가 신라 경순왕의 후손 상낙군(上洛君) 김변(金忭)으로서 수원으로 분적[1]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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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
규(揆) |
근(根) |
충(忠) |
성(成) |
강(康) |
구(求) |
병(秉) |
섭(燮) |
중(中) |
흠(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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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
우(雨) |
동(東) |
광(光) |
규(圭) |
진(鎭) |
승(承) |
상(相) |
대(大) |
교(敎) |
호(鎬) |
8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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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