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고씨의 시조 고중연(髙仲{木+筵})은 제주 고씨 중시조인 고말로(髙末老)의 10대손이다. 고중연이 고려 말기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고려 공민왕을 호종하여 경상북도 지역으로 피난하였다. 이때의 공을 인정받아 호종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1세조 고복림(高福林)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아들 고합(高合)은 지영주사(知寧州事)를 지냈다.
고경명(高敬命) 일가의 충효(忠孝)ㆍ절의(節義)ㆍ의열(義烈)은 높이 살만하였다. 그리하여 선조는 이들 일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광주에 사당을 짓게하여 포충(褒忠)이라 사액하고, 고경명(高敬命)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하고 시호를 충렬(忠烈), 아들 고종후(高從厚)에게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시호를 효열(孝烈), 아들 고인후(高因厚)에게는 예조 참의(禮曹參議)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의열(毅烈)이라 하였다.
장택 고씨(長澤 髙氏)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둘째 아들 학봉(鶴峯) 고인후(高因厚)가 순국(殉國)하자, 자손들이 고경명(高敬命)의 배위 정경부인 울산 김씨(蔚山 金氏) 슬하에 의지하다가 고인후(高因厚)의 처가가 있는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에 이거하여 살면서부터 학봉파(鶴峯派) 후손들을 창평 고씨(昌平高氏)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전라도 광주지방 집안을 말할 때 '기고박정(奇高朴鄭)' 이란 말이 있는데, 이들 집안이 지역 명문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바로 행주 기씨(幸州 奇氏)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장흥 고씨(長興 髙氏)의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충주 박씨(忠州 朴氏)의 사암(思菴) 박순(朴淳), 연일 정씨(延日 鄭氏)의 송강(松江) 정철(鄭澈) 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장흥 고씨(長興 髙氏)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장흥백파(長興伯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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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 [멀티미디어/연예인 모델 사진 화보] - 고씨 연예인
고씨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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