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가 당나라 선종(宣宗) 말인 859년 전후에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이끌고 신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하였다가 평안도 룡강(龍岡) 쌍제촌(雙悌村)으로 옮겨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노수의 맏아들 노해(盧垓)가 신라에서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지면서, 그를 득관조로 하여 광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의 계대(系代)가 실전되어 고려 때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진 노만(盧蔓)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고려(高麗) 감문위 대호군(監門衛大護軍) 노서(盧恕)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노서(盧恕)의 아들은 좌우위 대호군(左右衛大護軍) 노단(盧亶)이고, 손자는 감찰사 지평(監察司持平) 노준경(盧俊卿)이며, 노서의 증손자 노숭(盧崇)이 고려조에서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내고, 조선 태종 때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
노만(盧蔓)의 후손은 노승조(盧承肇)를 파조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와 노승관(盧承綰)을 파조로 하는 헌납공파(獻納公派)로 분파되었다.
노서(盧恕)의 후손은 노숭(盧嵩)의 다섯 아들을 파조로 하여 분파되었는데 장남 노상인(盧尙仁)은 양근공파(楊根公派), 차남 노상의(盧尙義)는 참의공파(參議公派), 삼남 노상례(盧尙禮)는 사간공파(司諫公派), 사남 노상지(盧尙智)는 경력공파(經歷公派), 막내 아들 노상신(盧尙信)은 판관공파(判官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광주군계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응(應) |
수(秀) |
용(容) |
재(在) |
현(鉉) |
태(泰) |
동(東) |
규(奎) |
용(鏞) |
준(浚)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추(樞) |
순(淳) |
주(柱) |
광(光) |
균(均) |
진(鎭) |
원(源) |
근(根) |
묵(默) |
주(周) |
4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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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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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계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구(九) |
병(炳) |
균(均) |
진(鎭) |
택(澤) |
동(東) |
환(煥) |
준(竣) |
32세 |
33세 |
3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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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錫) |
영(永) 주(柱) 채(彩) 근(根) |
식(植) 연(然) 희(熙) 형(炯) 환(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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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공계(三司公派)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환(煥) | 재(載) | 석(錫) |
윤(潤) |
동(東) |
응(應) |
달(達) |
진(鎭) |
락(洛) |
사(思)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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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 |
명(命) |
도(道) |
광(光) |
경(敬) |
성(性) |
재(載) |
2020/02/02 - [멀티미디어/연예인 모델 사진 화보] - 노씨 연예인